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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 필요한 건, 이념이 아닌 실용

독일 사회민주당(SPD)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다. 뿌리는 19세기 독일 노동운동 지도자 중 가장 유명한 페르디난드 라살레와 맞닿아 있다.

당시 라살레의 노동운 동은 혁명을 추구한다기보다는 현실의 범주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이웃 나라 프랑스의 노동 운동가들이나 사회주의자들은 “위로부터 받아먹기만을 기다리는 노동운동”이라고 혹평했었다. 그런데도 라살레의 노선은 사민당에 계승돼 오늘에 이르게 됐다. 독일 급진주의적 혁명운동은 그로부터 몇 십년 뒤에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리프크네히트나 로자 룩셈부르크로 대표되는 독일 급진주의 혁명운동은 오늘날까지 존속하지 못했다. 물론 이들의 사상이 라살레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념에 따라 운동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은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사회 정치 운동에서 이념이란 일종의 지도(map) 역할을 한다. 즉 이념은, 먼저 대다수의 노동자 혹은 서민이 처한 상황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설명해주고, 그것의 제거 방법을 제시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런 원인이 제거된 상태의 미래를 보여준다. 어떻게 하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이념은 일종의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지도에 따라 궁극적 목표는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라살레가 꿈꾸던 세상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꿈꾸던 세상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는 것인데, 그들의 이념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지도를 따라가다가 물웅덩이에 빠졌다면, 지도가 어떻든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물웅덩이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꿈꾸는 종착점은 달라도 지금 상황이 물웅덩이에 빠진 것이라면 당연히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탈출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는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 있다. IMF 구제금융 시기보다 훨씬 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빠진 웅덩이의 깊이가 더 깊을 수 있다는 것이다. IMF 당시에는 그나마 모아놓은 자산을 가지고 버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불황이 계속되던 차에 맞은 위기이기 때문에, 그동안 모아놓은 자산으로 버틸 수 있는 이들이 당시보다 적을 수 있다.

또 이번 위기는 IMF 때와 같이 아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초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갈등은 일단 접어놓고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한 모든 실용적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을 보면 아직도 진영 혹은 이념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민이 처한 상황은 가히 건국 이래 초유의 상황이라고 할 만한데도 아직도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도대체 지금의 국면을 탈피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더구나 180석을 가진 슈퍼 여당 내에서 개헌 얘기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개헌도 언젠가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은 맞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슈퍼 여당이 꺼내 들어야 하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분란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여야 간의 또 다른 분쟁거리를 만드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여당은 과거 금 모으기 운동을 언급하며, 긴급재난지원금의 자발적 기부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럴려면 온 국민의 마음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여야 간 분쟁 소지를 없애야 한다. 상대가 소수라고 무시해서도 안 되며,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만이 진리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갈라진 정치권의 화합을 통해 국민도 단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정치가 아닌 함께 가자는 정치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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