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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출 10분의 1로 줄어”…패션업계 중국發 공급망 붕괴로 연쇄 타격
코로나19 여파로 ‘공급사슬’ 붕괴
의존도 높은 중국 생산중단 영향
중소기업·영세 상인부터 직격탄
정상화 먼얘기…수개월 걸릴 듯
중견 업체들은 구조조정 가속화

“어떻게 버티냐고요? 빚 껴안고 간신히 사업 유지하고 있어요.”

동대문 도매상가인 ‘벨포스트’에서 5년째 장사를 해온 박모(35) 씨. 지난 20일 기자와 만나 “2월, 3월 그리고 4월까지…. 3개월 내내 매출이 평상시의 10분의 1로 줄었다”고 토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박 씨는 동대문에서 소위 ‘잘나가는’ 상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2월부터 거래액의 90%를 차지하던 해외 고객이 발길을 끊으면서 대출로 버티는 신세가 됐다.

지난 20일 밤 11시. 월요일이면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뒤엉키던 동대문 일대에 한기가 돌았다. 전국 각지와 해외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올라오던 소매상들, 원단을 배달하기 위해 모였던 지게꾼들과 이륜차들은 온데간데없었다. 한 상인은 “월요일이면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닐 정도로 분주했으나 이젠 국내 소매상들조차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섬유패션 산업의 ‘서플라이 체인’(공급 사슬)이 무너지고 있다. 섬유패션 분야에서 수년간 공급기지 역할을 해 온 중국이 공급에 차질을 보이면서, 중국에서 원·부자재와 완제품을 받아오던 중소기업·영세 상인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동대문의 근간을 떠받치던 이들이 몰락하면서 실핏줄처럼 연계된 섬유패션 산업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0일 밤 10시 동대문 도매상가인 ‘DDP패션몰’. 소매상인들로 분주해야 시간에 한산한 모습. [사진=박로명 기자]

▶中 의존도 높아진 섬유패션 산업=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섬유패션 산업의 공급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광저우를 중심으로 원·부자재에서부터 완제품까지, 저렴한 제조 원가와 대량 생산을 무기로 전 세계의 주문을 무섭게 흡수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P)가 발표한 세계무역통계에 따르면 2018년 중국은 세계 의류 수출의 31.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동대문은 5년 전까지만 해도 원단 수급에서부터 디자인·생산에 이르기까지 원스톱으로 의류를 제조하는 ‘클러스터’로 꼽혔으나 최근 들어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다. 패스트패션이 유행하면서 빠른 속도와 저렴한 단가가 중요해지자 도매상들도 중국 원단으로 현지에서 옷을 제작해 완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중국산 의류의 국내 수입량은 2013년 6150만5000달러에서 2017년엔 7909만6000달러로 28.6% 증가했다.

김묘환 컬처마케팅그룹 대표는 “한국은 섬유 산업을 바탕으로 가치사슬(밸류체인)이 완벽하다는 평을 받아왔는데, 10여년 전부터 중국과 동남아 등으로 봉제 생산이 넘어가기 시작했다”며 “패스트패션을 주도하는 해외 글로벌 브랜드와의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가 시장인 중국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밤 10시 동대문의 한 도매상가. 고객들이 없어 한산한 모습. [사진=박로명 기자]

▶중국發 코로나 쇼크…영세 상인부터 무너져=코로나19 이후 높은 중국 의존도는 국내 섬유패션 산업에 독이 됐다. 중국 공장들이 1월부터 멈춰 서면서 중국에서 원·부자재나 완제품을 들여오던 중소기업·영세 상인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상품 조달에 차질이 생긴 데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소비심리마저 위축되면서 매출이 쪼그라들었다.

동대문 도매상가인 ‘DDP패션몰’에서 20여년간 장사를 해 온 전모(47) 씨는 “중국 광저우 공장에서 직접 발주하거나 완제품을 수입해왔는데,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물류가 멈춰 서면서 물건을 받기 힘들어졌다”며 “이제는 중국 공장과 ‘위챗’으로 연락해 상품을 공급받고 있는데, 직접 검품하지 못하다 보니 상품 불량률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동대문에서 5년 넘게 일해온 이모(39) 씨도 “중국 공장에 주문을 넣은 상품들의 공급이 한 달 넘게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도 급감했다. 전 씨는 “코로나 사태로 주요 거래처인 중국과 일본 고객이 끊기면서 매출이 반토막났다”고 말했다. 이 씨는 “동대문은 사실상 중국 고객 수요로 먹고 산다”며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고객들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씨가 일하는 도매매장의 매출은 코로나19 이후 80%가량 줄었다.

일부 도매상들은 상품이 팔리지 않자 ‘울며 겨자 먹기’로 땡처리에 나서고 있다. 한 도매상인은 “큰 봉투에 옷을 몇십 개씩 쌓아서 3만원에서 5만원에서 처분하고 있다”며 “작년이었으면 한 벌에 5만원에 팔렸을 옷들”이라고 말했다.

▶공급 정상화 먼 얘기…“중소중견 업체 부담 가중될 것”=코로나19 이후 멈췄던 중국 공장들은 2월 중순부터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저우 등 공장 밀집 지역의 재가동률은 30% 수준에 불과해 공급 대란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중국에서 생산된 원·부자재가 동남아로 넘어가 완제품으로 제작되는 방식으로 전 세계 공급망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중국의 생산력을 대체할 국가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섬유·패션 산업은 원료압출기·소면기·방적기 등 거대한 생산시설과 숙련공이 필요해 진입장벽이 높은 산업으로 꼽힌다. 최근 베트남 등 동남아가 새로운 섬유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의 독점적 시설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공장이 100% 정상 가동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중소중견 업체의 경우 당장 가을·겨울 시즌 물량을 조달하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말했다.

국내 중견 패션기업인 A사의 경우 중국·필리핀 공장이 멈춰 서면서 상품을 100%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A사 임원은 “해외에 자체 공장을 둔 대기업들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현지 공장에 의존하는 중소중견 업체는 사정이 다르다”며 “상품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임금·임대료·전기세 등 고정 비용이 계속 나가 수익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상태가 2~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중소중견 업체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로명 기자/dod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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