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구노력 한계…원유 관세 등 조정 절실
정유업계가 공장 가동률을 줄이는 극약 처방의 검토에 들어갔다.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감소에 저유가 기조까지 설상가상으로 겹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을 감당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업계의 고통에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를 향한 하소연도 커지고 있다.
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정유업계의 공장 가동률은 역대 최저 수준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수요 위축을 버티지 못한 기업들이 잇달아 가동 중단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이 정기보수 등 공정 관리의 이유 없이 공장가동률을 이처럼 줄인 것은 지난 2008년 리먼사태로 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 더해 일부 업체들은 추가적인 공장 가동률 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원유를 공정에 투입해 석유제품을 제조하는 정유공장은 정제마진 악화에도 365일 24시간 공장을 멈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정유사는 가동량을 일부 줄이는 방식으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SK에너지는 지난 3월부터 85%로, 현대오일뱅크는 90% 수준으로 가동 감량했고 향후 시황을 고려해 추가 감량도 고려하고 있다.
GS칼텍스는 1달 정기보수를 앞당겨 진행 중인데 현재 시황에서는 재가동을 서두르기보다는 도리어 더 지연시켜야 할 상황이다. SK에너지도 5월말 예정된 정기보수를 조금 앞당겨 시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지금의 시황이 지속될 경우 이를 버티지 못하는 업체는 가동률을 최대 50%까지 낮추거나 공장을 멈추는 방안까지도 검토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5~6달러가 적정선인 정제마진이 한 달 가까이 마이너스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공장을 돌리는 게 의미가 없는 수준까지 왔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공장 가동률이 어디까지 떨어질지 가늠하기도 힘들다”고 전했다.
이어 “내수 판매량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역내에서 가장 높은 공정능력을 갖춘 국내 정유사들마저도 공장 가동률을 낮춘다는 것은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는 것”이라며 “시황 악화로 국내 정유사의 손익 악화 가능성이 높아져 추가적인 정유사의 가동 감량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자구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정유업계는 정부의 지원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국이 제조업 전반의 산업 붕괴 위기에도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원유 수입관세 유예, 폐지 요구는 해묵은 과제다. OECD 국가 중 원유 관세국가는 한국, 미국, 호주, 멕시코 네 나라뿐이다. 이 중 관세율이 극히 낮은 미국, 호주와 원유수입 의존도가 낮은 멕시코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관세 부과국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원유 ℓ당 16원이 부과되는 석유수입부과금 요율 인하 요구도 거세다. 원유관세와 별개로 준조세 성격으로 부과되는 석유수입부과금은 지난해에만 1조4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석유수입부과금으로 조성된 재원은 대부분 신재생에너지 보급 사업 등 에너지 국책사업에 쓰여져 정유사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정부 당국에 관세 인하, 대규모 투자 시 인센티브 등 정유사들의 요구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