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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총선 러브콜’ 거절하고 “더 성찰하겠다”는 김동연, 그는 뭘 더 생각할까
50여일만에 페이스북에 글 올려 “더 고민하려 한다”
총선 앞두고 정가 러브콜 물리친 이유 자세히 밝혀
“현위기 해결해법·대안 갖고 있지 못하다” 솔직 고백
다만 “위기극복·혁신에 보탬되는 길 걸어보려 한다”
제도 정치권 외 청년중심 사회참여 등 모색하려는듯
“말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천 통해 변화 만들고 싶어”
여야 영입 1순위 인물의 총선 이후 행보에 시선집중
지난해 12월 미시간대를 찾은 김동연(오른쪽) 전 부총리가 은사인 로버트 액셀로드 교수와 사진을 찍고 있다. 로버트 액셀로드 교수는 게임이론의 대가로, 김 전 부총리의 박사논문을 지도했다고 한다. [김동연 페이스북]

지난 2008년 추석 연휴때,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은 극장에 있었다. 연휴를 맞아 모처럼 부인과 함께 영화를 보려고 한 것이다. 영화 관람 중 업무용 휴대전화가 계속 울렸다. 애써 무시하려 했는데 서너번 계속 신호음이 왔다. 뭔가 터졌구나. 황급히 영화관을 나와 전화를 받았는데, 예감대로였다.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질 것 같다는 긴급 전화였다. 급한 일이 생겼으니 혼자 보라고 부인에 미안함을 담은 메시지를 보낸후, 곧바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후 몇개월간 금융위기와의 전쟁이었어요. 금융위기 최전선에서 밤을 새기 일쑤였죠.” 국가에 대한 사명감, 자신의 일에 대한 소명의식 없이는 버티기 힘든 나날이었다고 언젠가 김 전 부총리를 만났을때 그가 털어놓은 소회였다.

흙수저 출신이자 ‘고졸신화’로 유명한 김 전 부총리는 문재인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냈다. 문 대통령의 삼고초려로 초대 경제부처 수장을 맡았던 것이다. 하지만 기업 혁신으로 경제 발전을 추구하는 혁신성장론자인 당시 김 부총리와 국민들 주머니를 채워 소비진작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소득주도 성장론자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갈등설은 꾸준히 제기됐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에 대한 이견도 ‘경제 투톱’의 불화설을 낳기도 했다. 특히 기업과의 스킨십에 인색하지 않았던 김 부총리와 싸늘한 대기업관을 가진 장 실장의 근원적 차이점으로 인해 다양한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이 불화설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에 대한 소신을 저버리지 않은 김 전 부총리에 대해선 긍정적인 평가가 지금도 우세해 보인다. 그가 경제부총리를 그만두고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지만, 이번 총선(4월15일)을 앞두고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까지 ‘영입 1순위’로 거론되고 실제 각종 러브콜을 받은 것은 이같은 ‘김동연 평가’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실제로 정치권은 물론 유명 대학에서도 ‘김동연 모시기’ 경쟁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에서도 이런 사실에 주목해 이번 총선에서 김 전 부총리가 직접 나서느냐, 아니면 후일을 도모하느냐 등의 각종 분석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총선을 앞두고 ‘핫한 인물’이었음은 분명하다.

이런 김 전 부총리가 자신을 둘러싼 최근까지의 정치권과 주변의 정치참여 요청 등에 대한 본인 입장을 지난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내놔 시선을 끌었다. 그는 지난 1월30일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 출범 소식을 알린뒤 페북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니 이날 페북 글은 50여일만에 올린 것이다.

페북 내용은 크게 세가지다. 정치 입문 요청을 사양한 것에 대한 배경과 생각, 향후 하고 싶은 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위기 극복 응원메시지다.

그는 일단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출마 요청을 받은 사실을 밝히면서 “당분간 더 성찰하겠다”고 했다. 현재의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생각을 정리한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좀더 찾아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부총리를 그만둔 뒤 제의받은 여러 자리들을 모두 사양했다”고 했다. 그 이유로 그는 “공직생활 내내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의 경제상황이나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큰 책임감을 느끼는데,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관직을 더 하겠다는 것은 욕심이자 염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30여년 이상의 공직자로서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스스로 경계했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34년 넘는 공직생활 동안 제도권 정치를 가까이서 경험하면서 정치는 시대적 소명의식, 책임감, 문제해결 대안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며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도 안되는 것이 정치란 생각”이라고 했다. 그 역시 최근의 사회적 갈등과 위기 국면에서의 뚜렷한 해답과 대안이 없기에 정치에 덥석 발을 담그는 것은 자신의 철학과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예천에 간 김동연 전 부총리가 사과농사를 짓는 젊은 청년들을 우연히 만나 꿈과 희망을 얘기한뒤, 이들이 재배한 사과박스를 날라주고 있다. [김동연 페이스북]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페북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게 도리라고 여겨 글을 올렸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다들 힘들고 경제 어려움까지 가중된 상황이어서 정치적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인적 의견 표명을 자제했는데, 주변인에 대한 예의상 본인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글을 띄웠다는 것이다. 김 전 부총리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댓글과 메시지, 전화로 총선 출마 등 정치참여, 후원회장 수락 여부에 대한 입장을 묻고 의견을 주셨는데 지난 글들을 통해 입장을 밝히긴 했지만 제 상황을 정리해 말씀드린다”고 전제했다.

내가 김 전 부총리의 페북 글에 흥미를 느낀 것은 그가 여야를 망론해 영입하고 싶은 인물이라는 무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향후 ‘김동연의 선택’은 뭘까 하는 개인적인 궁금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총리를 그만둔뒤 각계의 영입 제의를 거절한 그가 어떤 길을 모색할지 유추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페북 글 행간에서 그의 향후 계획 일부를 캐치할 수 있었다.

김 전 부총리를 지난해 9월 지방의 한 강연장에서 만난적 있다. 그는 지난 2018년 12월 별도의 이임식을 갖지 않고 1년6개월간의 부총리직을 손에서 놓았다. 이임사는 “이제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간다”는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로 대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경제부처 수장에서 물러난 뒤 수개월간 소시민으로 지냈다. 그런때 그를 만난 것이다. “공직생활을 끝낸뒤 지방을 돌아다녔어요. 시골 구석구석까지 그냥 발길 닿는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갔어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자가용이 아닌 기차나 시외버스를 타고 곳곳을 누비면서 ‘사람’들을 만났단다. 번잡한 서울을 벗어나 그냥 사람 사는 세상이 보고 싶어 그렇게 했단다. 서울에 있으면 피치못하게 사람을 만나야 하고, 전화도 받아야 하고, 그러다보면 여러가지 자리 제의를 받는 등 복잡한 삶에서 허우적거릴게 뻔하기에 당분간 시골냄새에 빠져 살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실제로 부인과 함께 전라남도 구례, 광양, 여수, 순천, 벌교 등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버스에서 만난 어르신들과 이런 저런 사는 얘기도 나눴고, 농부들로부터 농촌의 현실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특히 구례와 상주 등에서는 우연히 본인을 알아본 젊은 농민들을 만났는데, 그들의 꿈과 희망을 들어보는 소중한 추억도 경험했다고 한다.

“공직에 34년이나 몸담았고, 나름대로 지역 현장을 50차례 이상 찾았는데 공직을 벗어버린 상태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왜 지방을 돌아다니느냐는 말에 대한 그의 답이었다.

사실 그냥 소시민으로 계속 살겠다면 이런 행보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든, 뭐든 뭔가 새로운 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라고 물었더니 그냥 “생각 중”이라고만 했다. 김 전 부총리 주변에 물었더니 그보다는 구체적인 답이 돌아왔다. 주변인 중 하나는 “김 전 부총리가 기존 정치권에서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사람인 이상 고민하고 있지 않겠는가”라며 “다만 김 전 부총리는 기존 제도권 정치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숙고를 하고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세력은 작더라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일상을 변화시키는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게 낫지 않을까 등의 근원적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김 전 부총리가 최근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출범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평소 ‘유쾌한 반란’을 주창하는 그는 이와 관련해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그동안 형성된 우리의 틀을 뒤집고 사회의 문제에 적극 부딪치는 것”이라고 했다. 기존의 식상한 틀을 깨고, 각종 사회 갈등과 위기 현안을 유쾌한 반란을 꾀해 함께 극복하자는 것이다. 이것 만으로도 제도권 정치와는 분명 차별화된다.

그가 앞서 페북을 통해 ‘구멍뒤주’ 화두를 꺼낸 것도 이 일환이라는 평가다. 구멍뒤주는 뒤주 윗부분에는 큰 구멍을 뚫고, 아래부분에는 작은 구멍을 뚫어놓은 것을 말한다. 누구든 돕고 싶은 사람은 윗구멍을 통해 쌀을 붓고,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은 손에 잡히는 만큼 쌀을 가져가도록 한 것이 바로 구멍뒤주다. 누가 넣었는지, 누가 꺼내갔는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도와주는 사람은 자기가 기부했다고 밝힐 것 없고, 도움을 받은 이는 자존심이 상하지 않아도 되니 구멍뒤주는 어쩌면 바람직한 나눔과 사회환원 삶의 모델이라는 게 김 전 부총리의 소신이라고 한다. 그가 늘 고민해왔던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 계층 사다리의 이동 문제를 구멍뒤주와 연결지은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전 부총리가 강연 등을 통해 주창하고 있는 ‘유쾌한 반란’ 이미지. 그는 기존에 고착화된 우리의 틀을 뒤집어 사고하고 실행해 사회변화에 일조하는 삶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김동연 페이스북]

이런 김 전 부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인 위기 극복과 혁신에 작은 보탬이라도 되는 길을 걸어보려 한다”고 했다. 향후 행보를 짚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부총리를 그만두고 지방 여러 곳을 다니며 생각이 달라도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면서 상생하려는 의지와 실천을 보았다”며 “우리사회의 상생과 통합의 길도 제도권 정치보다 생활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현장에서 실제 민생의 주체들과 함께 하는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생각해본다”고 했다. 그는 특히 “공감, 공유와 연대를 기본철학으로 하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최근 만든 것도 이런 취지”라며 “말이 아니라, 작더라도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제도권 정치에서 정치세력화를 하기 보다는 현장 민심 기반의 생활정치에서 상생과 통합을 도모하는 길을 추구하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에 김 전 부총리가 기존 정치권 입성보다는 작지만 유의미한 실천력을 지닌 청년 중심의 ‘생활밀착형 생활정치’쪽으로 마음을 굳혔다는 말도 뒤따른다. 사단법인 기치 중 농업혁신이 그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34년의 공직생활, 그리고 대학총장 등의 경험을 통해 농업혁신을 비롯한 산업혁신, 교육혁신 등에 일조하는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페북에서 우리 국민들의 위기극복 DNA를 믿기에 코로나19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응원메시지를 보내며 “이번 코로나19 대응에서 우리 경쟁력이 입증된 디지털과 결합한 교육·의료·바이오를 세계적인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평소 ‘혁신 주창자’답게 이번 위기를 교육혁신과 산업혁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김 전 부총리가 이렇듯 공직 후 지명도가 쌓이면 곧바로 여의도로 향하는 일부 인사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려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권에서 ‘큰 일’을 해주기 바라는 일부 극성스런 주변인들의 바람과 재촉에도 이번 총선에서 선을 긋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개척하겠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일구는 방법론에서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청년 중심, 비전공유층 중심의 작지만 의미있는 세력화 등으로 우리 일상생활 변화 운동을 주도하는 게 그의 구상이라는 말도 들린다.

다만 정가에선 김 전 부총리가 생활정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이번 총선후 제도권 정치에 뛰어드는 코스를 밟을 것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수많은 혁신가들이 작지만 큰 생활변화 운동을 벌였지만, 세력화 한계를 느껴 다시 현실정치에 발을 들어놓은 사례를 무시할 수 없다는 논리다. 정치권 관계자는 “일단 김동연이라는 무게감 있는 인물을 정치권이 그냥 놓아두지 않을 것”이라며 “갈등과 위기의 반복인 세상에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그가 갖고 있는 한 ‘작은 세력’으로는 그것을 실현할 방법이 없다고 결국 느낀다면, 기존 정치권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를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암튼 김 전 부총리는 세상 혁신을 꿈꾸면서도 기존 정치권과는 일단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 이후 정치권의 역학관계 변화와 무관하게 그가 현재의 구상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과연 그가 페북에서 밝힌대로 우리 사회의 화두인 위기 극복과 혁신에 ‘작은 보탬이 되는 길’은 뭘까.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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