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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CEO…그들은 지금 아프다
예상치 못한 복병 코로나 바이러스 만나
연봉반납 등 솔선수범…직원 설득 나서고
회사 생존·도태 절체절명 위기로 내몰려
‘이윤 최우선’ 20세기 경영은 구시대 유물
이젠 사회적 문제 해결 리더십도 깆춰야

#1. 영국 굴지의 통신사 브리티시텔레콤(BT)의 필립 얀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와서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CEO 가운데엔 처음 코로나19에 걸린 사례라고 가디언 등 외신들은 전했다. 얀센 CEO는 확진 판정 전 휴대전화 업계의 주요 인사들을 여럿 만났기에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걸 대중에 알리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몸이 조금 안 좋은 거 같아 예방조치의 하나로 검사를 받은 건데, 결과가 나오자마자 자가격리를 했다”며 “내가 만난 파트너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BT 측은 영국 보건당국과 긴밀한 협의 하에 회사 본부의 주요 공간을 소독하고 CEO와 접촉한 직원 건강상태도 점검했다. 루시안 그레인지 유니버셜뮤직 CEO도 코로나19 탓에 얼마 전 UCLA 병원에 입원했다. 주간지 버라이어티는 그레인지 CEO의 60세 기념 생일파티엔 애플의 팀 쿡 CEO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2. 주요 항공사들은 요즘 초상집 분위기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서다. 미국 항공사들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발 여행자들의 미국 입국을 30일간 금지한다고 발표한 뒤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CEO들은 앞다퉈 연봉 삭감·동결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이 4개 대륙의 20여개 회사를 조사해 파악한 결과다. 항공업에서 파생한 항공화물 취급업체·여행사 등도 같은 분위기다. 경우에 따라선 이미 채용이 확정된 인원을 자르거나 직원의 급여를 줄이기도 하지만, 주로 CEO가 먼저 총대를 멘다. 미국 유나이티드항공의 CEO는 최소 오는 6월까진 연봉을 포기하기로 했다. 개리 캘리 사우스웨스트항공 CEO는 당분간 연봉의 10%를 덜 받는다. 싱가포르항공, 에어뉴질랜드, 호주의 콴타스, 영국 버진애틀랜틱의 CEO도 비슷하게 움직였다.

잔인함이 서린 ‘상징성’이다. 수장이 먼저 조직을 다잡기 위해 희생하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기업 마슬란스키+파트너스의 마이클 마슬란스키 CEO는 “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CEO가 양해를 구하면서 항상 처음에 하는 말이 ‘당신도 힘들지’라는 것”이라며 “경영자가 먼저 본을 보이는 게 직원들이 연봉 삭감에 동의토록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벨기에의 맥주 제조사 앤하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의 카를로스 브리토 CEO는 작년 하반기 보너스를 받지 못했다. 과도한 비용이 회사 실적을 깎아 먹은 데다 코로나19로 중국인들의 외부활동이 ‘올스톱’ 돼 맥주 수요가 급감했기에 내려진 냉혹한 평가였다. 브리토 CE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빵집을 운영할 때도 매출이 변변치 않으면 보너스를 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실적이 나쁜 해 뒤엔 리더가 위기에 대처하는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CEO가 ‘위기의 시절’ 한 복판에 섰다. 예기치 못한 ‘복병’ 코로나19는 CEO들에게 살아남을 건지, 도태될 건지를 매섭게 추궁하고 있다. 돌발 상황은 언젠간 잠잠해지는 단기 리스크라는 측면에서 처방만 제대로 내릴 혜안이 있으면 극복 가능하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장막에 가려 잠복해 있는 경영 원칙의 변화가 더 큰 난관이다. 감염병에도, 경영전략에도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CEO만의 추락이 아닌 그에 딸린 수 백~수 만명의 직원도 흔들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2020년대 초반부터 불어닥친 것이다.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적어도 서류상으론 CEO는 황금기에 있다. 미 증시에서 시총 상위 500대 기업에 속한 CEO는 2600만명의 직원을 좌지우지한다. 이익도 잘 내왔고, 연봉도 높다. 이들 CEO 연봉의 중간값은 1300만달러(한화 약 161억여원)에 달한다.

구글 모기업인 알파벳의 선다 피차이 CEO는 2023년까지 무려 2억4600만달러의 연봉 계약을 맺었다. 이들이 해고되거나 언제든 은퇴할 확률은 10% 가량이라고 한다. 얼마 전 갑작스러운 심장 수술을 받은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CEO에겐 회사 경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후계자는 누가 될지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세계 최대 금융회사의 CEO 리스크는 금융계 판도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사안이어서다.

그런가 하면 CEO는 실적이 변변치 않아도 사는 데엔 지장없다. 버지니아 로메티 IBM CEO는 오는 4월 태연하게 물러난다. 그의 재임기간 이 회사 주가는 202%나 하락했다. 직장인의 꿈이 CEO인 이유들이다.

할 만 한 거 같은데 CEO들은 최근 몇 년새 경영하기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해왔다. 내로라하는 기업 CEO의 80% 가량은 내부 승진자인데, 이런 극소수의 엘리트들은 큰 변화에 직면해 있다. 과거 유력 CEO들은 이른바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경영을 해왔다. 최근 타계한 잭 웰치 전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이 그렇게 해 ‘세기의 경영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수식어를 달았다. 1981~2001년까지 GE를 진두지휘했다. 공장을 열고 폐쇄하는 과정에서 이익을 내지 않는 사업부문은 냉혈한처럼 잘라냈다.

잭 웰치의 시대는 끝났다. 20세기의 경영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경제 구조와 정치 상황, 가치관이 변화한 영향이다.

경제가 움직이는 매커니즘이 바뀌었다. 스탠더스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속한 대형 미국기업의 32%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기업 시장가치의 61%가 연구개발(R&D), 브랜드·데이터 등에 기반을 두고 있다. CEO가 투자 관련한 결정을 하더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고, 모호하게 됐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제정 러시아의 황제 차르(Czar)처럼 행동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회사와 CEO 권한의 경계도 흐릿해졌다. 차량 공유업체 우버엔 400만명의 운전자가 있다. 그러나 정식 채용된 직원이 아니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공급망에 수 백 만명의 직원이 일을 하지만, 애플 정사원이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임무는 막중하다. 회사 경영을 위해 곳곳에 촘촘하게 포진된 사람들은 민감한 정보들을 협력사·고객들에게 노출시킬 개연성을 항상 갖고 있다. 톱다운(top-down) 방식의 상명하달은 통하지 않는다.

기업의 존재 목적도 근간이 흔들린다. 기업 또는 소유주 이익 극대화가 지상과제였다. 이걸 바꾸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위로부턴 정치권이 그렇게 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주자가 되려고 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는 CEO에게 직원과 협력사, 고객을 더 배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갈수록 심화하는 빈부격차가 글로벌 이슈가 된 데다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업과 CEO의 역할 변화에 관한 요구는 ‘좌파’에만 국한한 화두는 아니다. 소비자 뿐만 아니라 기업 내 젊은 직원들도 사회 문제에 회사가 적극 호응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가. 2020년대를 헤쳐 나가야 할 CEO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는가란 의문이 남는다. 이제까지 부각한 문제에 단서가 있다. 정통 경영 원칙의 핵심이 자원 재배분에 있었다면, 이젠 인적 자원의 재배분이 긴요하다. 어떤 성공도, 모든 실패도 사람에 기인한다. 유력 경제잡지 포천의 앨런 머레이 편집인은 최근 독자들에게 ‘차세대 리더십’이란 제목의 팟캐스트를 시작한다는 내용의 e-메일을 발송, “최근 몇 년간 경영계에서 큰 변화가 일고 있다는 걸 느꼈다”며 “21세기형 리더는 금융자본보다 인적자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최고의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대형 CEO’는 이전 CEO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에 더해 회사와 파트너사간 데이터 흐름을 규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이익을 내는 인적자원과 위험을 내포한 부류의 재배치에도 능숙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장기 이익에 맞게 회사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눈 앞에 이익만 좇아선 안되고, 기후변화에 같은 지속가능성 관련 이슈에도 눈을 크게 뜨고 있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홍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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