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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전국민에 재난기본소득’ 난색 표한 홍남기, 그를 두둔하는 이유
홍 부총리, 재난기본소득 도입 여부에 부정 답변
국회 질의서 “상당부분 많은 검토 필요” 선 그어
“재원 문제 고민되고 국민 공감대도 중요하다”
김경수 지사 ‘전국민에 100만원 지급’ 제안 후
이재명 지사·박원순 시장이 재차 불지핀 가운데
현금복지 경계한 경제부처 수장의 말은 의미 커
코로나19 위기탈출책 절실하나 현금복지는 위험
포퓰리즘 논란에 “베네주엘라 답습할 뿐” 경고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

“현금 복지? 안돼요. 정말 안돼요”, “전국민에게 돈을 준다는 것은 하수책이자, 미봉책일 뿐입니다”, “총선용 포퓰리즘 아니겠어요?”.

글을 쓰다보면 어떤 날은 전혀 반응이 없는데, 어떤 날은 지인들로부터 이런저런 적잖은 전화나 문자를 받곤 한다. 지난 9일은 후자였다. 그날 나는 ‘김경수 지사님, 고맙지만 100만원 안받을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 기사에 대해 많은 이가 자신의 의견을 밝혀온 것이다. 평소 눈팅(별다른 반응 없이 눈으로만 읽는 것)만 하다가 “너무 공감돼서 연락했다”는 지인도 있었다. 일부 “현금 준다는 데 뭘그래요?”라는 핀잔성 반응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전국민 상대의 현금복지에 반대했다. 특히 한 지인은 “잘나가던 베네주엘라가 현금살포 복지로 거지신세가 된 것을 정부는 모르는가 봐요”라고 꼬집기도 했다.

바로 전날 김경수 경남지사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우리 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기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현금복지로 내수시장에 일단 돈부터 돌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지사는 1인당 100만원을 지급하는데 약 51조원이 들며, 고소득층에 대한 기본소득 지급액은 내년 세금에서 환수하면 된다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했다. 그런 김 지사의 제안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견해를 피력한 기사를 썼는데, 그 반응이 작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에도 재난기본소득 문제는 계속해서 다른 언론에서도 화두의 정중앙에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곤, 그 이슈 폭발성이 간단치 않음을 새삼 확인했다.

이런 가운데 경제부처 수장이 재난기본소득 도입에 난색을 표했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코로나19 극복대책의 하나로 “재난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30만원 지급하고 대구·경북 지역에는 50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상당 부분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부정적인 뜻을 피력한 것이다. 그는 “재난기본소득을 전국민을 대상으로 주는 게 효율성이 있는지 짚어봐야 하고, 재원 문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원에 한계성도 있고 국민의공감대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산이나 소득, 근로와 무관하게 전국민을 대상으로 주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금복지가 초래할 여파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개인적으로 홍 부총리의 이런 의견은 지금 시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코로나19 수도권 공동방역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경기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

그도그럴 것이 재난기본소득 문제는 김경수 지사가 거론한뒤 청와대가 “검토한적 없다”고 선을 긋자 쏙 들어간뒤 최근 슬금슬금 살아나는 분위기였다. 그 불씨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코로나19 수도권 방역 대책회의’를 주재했는데, 이 자리엔 이재명 경기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 지사는 코로나19 재난상황 극복 및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전국민 대상의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이다. 이 지사는 “재난극복 긴급대책으로 국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기본소득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며 재난기본소득의 구체적인 지급 방식에 대해선 일정기간 내에 반드시 사용될 수 있도록 사용기한이 제한된 지역화폐로 지급할 것을 제안했다. 박 시장도 이에 가세했다. 박 시장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실업급여 등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중위소득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총 4조8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재난긴급생활비 지급을 건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는 회의 후 “대통령은 기본소득 개념을 담은 여러 유형의 지원 방안에 대한 결론을 내지 않았고, 이를 정부와 지자체가 논의할 과제로 남겨두고 토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회의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취약계층 5만명에게 52만7000원을 지급키로 한 전주시 사례를 들며, 지자체 노력을 강조했다고도 전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재난기본소득 도입 취지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됐고, 이 이슈가 재점화된 것이다. 다만 청와대는 이를 부인했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이 도입 가능성을 열어둔 게 아니고 토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인 만큼 재난기본소득에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색깔은 약간 다르지만, 여권의 잠룡으로 평가되는 김경수발(發), 이재명발(發), 박원순발(發) 재난기본소득 도입 주장에 문 대통령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뒤따랐다. 이런 시점에서 홍 부총리의 전국민 대상의 재난기본소득 ‘난색 표명’은 의미가 작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정치권이야 그렇다고 해도, 현금복지의 위험성을 경제부처 수장이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는 의견도 작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으로 무게가 있는 여권의 정치 리더인 이 지사, 김 지사, 박 시장의 현 경제상황에 대한 엄중한 위기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님이 끊겨 망하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면서 일부 지역경제는 폭망 직전이고, 우리 경제는 피폐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 극복의 출발점을 재난기본소득에서 찾으려는 선의의 노력으로 본다. 일부에선 총선을 겨냥한 표퓰리즘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지난 8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위기에 빠진 경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민에게 1인당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 있다. [연합]

하지만 위기에 빠진 특정 계층에 대한 긴급지원은 얼마든지 찬성하지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현금지원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이가 적잖은 게 사실이다. 좋게 말하면 현금복지, 나쁘게 말하면 현금살포 정책의 폐해를 많이 목도해왔지 않은가. 핀란드와 베네주엘라가 대표적인 예다. 핀란드는 지난 2017~2018년께 심각한 실업률에 대해 고민했고, 2년간 25∼58세 실업자 2000명에게 조건 없이 매월 560유로를 주는 기본소득 실험을 한 바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4월 포기선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일정 소득이 생기니 아예 직장을 포기하는 이가 늘면서 실업률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1970년대 남미에서 가장 잘살던 나라였던 베네주엘라가 현금살포 정책으로 인해 거지신세로 전락한 사례는 현금복지 정책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대구 수성을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이런 점에서 하나의 시사점을 던졌다. 그가 탈당의 당위성을 인정받고 대구에서 무소속 당선 후 화려하게 당에 복귀하겠다는 플랜을 달성할지 여부는 차치하고, 그의 출사표에 담긴 문장 몇개가 시선을 끌었다. 홍 전 대표는 출사표를 통해 “여권 일각에 추진하는 재난기본소득제는 포퓰리즘 퍼주기이고 ‘언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라고 했다. “저는 문재인 정권에게 대구·경북지역 살리기를 위한 시급한 선제적 조치로 ‘TK 코로나 뉴딜 20조원’을 요구한다”며 이같이 밝힌 것이다. 20조원의 뉴딜 플랜이 욕심(?)의 주장일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지만, 그는 “TK 코로나 뉴딜을 통해 긴급 구호와 피해지원, 지역경제 살리기에 쓰고 나중에 회복되면 되갚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했다. 지원받은 돈은 나중에 지역경제가 살아나면 갚겠다는 것이다. 홍 전 대표가 주창한 기본 개념, 즉 지원은 충분히 받되 여건이 좋아지면 갚아나가겠다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많은 이들은 코로나19로 위기감에 휩싸인 지자체들이 정부 힘을 빌려 각각의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 해당 지역에 대한 일부계층의 긴급지원에 나서는 것엔 찬성한다. 다만 국민의 의지를 허약하게 만들 수 있는 전국민 대상의 공짜복지는 경계하는 것이다. 한번 전국민 상대로 현금복지를 행하면 제2,3의 현금복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상상하긴 싫지만, 현재의 코로나19 위기보다 향후 더 큰 위기가 오면 그때 또다시 전국민에게 현금을 뿌려야 할지도 모른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전국민 대상의 현금복지로 인해 그 돈을 갚아야 하는 이는 해당 정책입안자나 실행자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세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100만원(김경수 지사 제안대로라면)을 나중에 갚게 하고 싶진 않다. 우리 아이들이 100만원의 잠정적 빚쟁이가 된다는 게 서글프지 않은가. 홍 부총리 생각 역시 현재로선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반갑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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