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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홍준표가 빼앗겼다는 ‘들’엔 봄이 올까
‘숙고 끝’ 돌고 돌아 대구 무소속출마 택한 홍준표
이상화 시인 시비 앞에서 ‘수성을 출사표’ 던질 듯
자신을 황교안 대표 견제 따른 희생양으로 호소해
‘무소속출마→당선→복당’ 본인구상대로 될지 주목
“누구 맘대로” 혹시 모를 대구 정서에 고전할 수도
복수혈전 선언한 홍 전 대표에 긍·부정 시선 반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14일 이상화 시인의 시비를 찾아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홍 전 대표는 17일 이곳에서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하기로 했다. [홍준표 페이스북]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이하 생략)”

학창시절 암기하면서 배웠던 그 시, 일제하에서 민족적 울분과 저항을 노래한 그 시, 이상화 시인의 그 유명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다. 갑자기 이 시와 시인이 정치권에 화두로 등장했다. 미래통합당 소속의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공천 반발과 함께 무소속 출마 뜻을 밝히면서 시인을 소환한 것이다. 시인으로선 매우 불쾌할 일일지 모르겠다. 시인이 하늘에서 “정치꾼 하나가 감히 내 이름을 팔아?”라며 호통을 치실 수도 있겠다 싶다.

암튼 그것과 상관없이 홍 전 대표는 시인을 앞세웠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홍 전 대표는 지난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는 화요일(17일) 오후 2시 대구 수성못 이상화 시비 앞에서 대구 수성을에서 대구 시민들의 시민 공천으로 홍준표의 당부를 묻기로 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 승리를 통해) 문재인정권을 타도하고 2022년 정권 탈환의 선봉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탈당 시점도 못박았다. 홍 전 대표는 “탈당은 무소속 후보 등록하기 직전인 3월 25일에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300만 당원 동지 여러분!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저를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며 “반드시 승리하고 원대복귀 하겠다”고 했다.

홍 전 대표가 거론한 이상화 시인의 시비는 대구의 대표적 명소 수성못 둔치에 위치해 있다. 대구 출신의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저항시로 유명하며, 대구의 자랑인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런 시인의 시비 앞에서 총선 출사표를 던진다는 것은 홍 전 대표의 각오가 그만큼 비상하다는 뜻이자, 그 시비가 있는 수성을에서 출마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게 중론이다. 수성을에서 자신의 ‘빼앗긴 들’을 다시 탈환하겠다는 공식적인 의사표현이라는 것이다.

홍 전 대표는 왜 자신의 출마를 ‘빼앗긴 들’과 연결짓는 것일까. 그 답은 페이스북에 녹여져 있다. 그는 이날 3시간 뒤 페이스북에 다시 글을 올려 자신은 협잡공천의 희생양이 됐기에 이를 헤쳐나가겠다고 했다. 홍 전 대표는 “이번에 황(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과 김(김형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장·현재는 사퇴함)이 합작한 협잡공천으로 공천이 배제됐다”며 “참으로 황당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산야의 들꽃처럼 살아온 사람이고 역경을 즐기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사람이며, 불꽃선거로 압승하고 다시 당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경남 양산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출마와 관련한 거취를 표명하고 있다. [연합]

창녕 출신인 홍 전 대표는 당초 고향 쪽(밀양·창녕·함안·의령) 출마를 염두에 뒀다가 통합당 공관위가 ‘험지출마’를 요구하면서 경남 양산 쪽으로 출마지를 변경한 바 있다. 그래서 양산을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통합당 공관위로부터 여기서도 컷오프(공천배제) 당했다. 그걸 두고 홍 전 대표는 황 대표의 집중 견제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홍 전 대표는 지난 12일 양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양산을 예비후보 사퇴와 함께 대구 무소속 출마와 탈당 선언을 했는데, 그때의 기자회견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홍 전 대표는 “서울 종로대전은 그 두 사람(이낙연 전 총리, 황교안 대표)이 다 밋밋한 사람이다. 그래서 선거과정에서 핫이슈가 안 나올 것”이라며 “그런데 양산대전을 하면 김두관 의원이나 저는 아주 다이나믹하게 선거를 했을 것이고, 뉴스는 종로대전보다 양산대전이 한달 이상 가장 핫하게 떠올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황 측이나 그 사람들은 그걸 겁내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양산대전을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주지 않으려고 지난 두달 동안 그렇게 음모와 공작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1번지라고 하는 종로 선거대결 보다 양산대결이 더 뜨겁게 화제가 되는 구도를 황 대표가 경계했다는 뜻이다. 즉, 종로선거의 승패 여부를 떠나 대선주자에 연연하는 황 대표가 양산대전에서 떠오를지 모를 자신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 양산 컷오프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대선주자급인데 공정한 경쟁을 할 생각 않고 미리 싹을 자른 황 대표의 횡포에 자신은 ‘빼앗긴 들’ 신세가 됐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홍 전 대표는 이에 양산 컷오프 이후 “홍준표 다운 길을 가겠다. 숙고하겠다”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 등의 시나리오에 고민해왔다. 그러다 대구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창녕, 양산 등을 돌고 돌아 대구를 최종 목표점으로 삼은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구 출마가 쉬운 길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인 것은 나름대로 절박함을 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홍준표 다운 길을 가겠다고 했는데, 대구 출마는 쉬운 길이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구는 우리당 지지율이 65%인데, 공천을 받으면 쉬운 길일 것”이라며 “그런데 공천 못받으면 양산 못지않은 험지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질문 기자를 향해 “아마 정치부 기자 조금이라도 했으면 그 정도는 아실 것”이라고도 했다. 무소속으로는 대구에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것이다.

정가에선 홍 전 대표가 대구 수성을 출마 의지를 굳혔고, 이에 이상화 시인 시비를 찾아 그 당위성을 강조하는 사전이벤트성 일정을 앞서 공개적으로 노출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최근 영남일보에 따르면, 홍 전 대표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갈 곳은 수성을 밖에 없으며 사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니고, 수성구가 대구 정치1번지니까 간다. 상징적인 곳”이라고 했다. 앞서 언론에선 홍 전 대표의 수성갑 출마 가능성도 점쳤지만, 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수성갑에는 최근 수성을 지역구 4선의원인 주호영 의원이 이동배치된 곳이다. 수성갑은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역 현역인 김부겸 의원이, 미래통합당에선 주 의원이 출사표를 던지며 불꽃 대결을 준비 중이다. 그곳의 출마 여부를 묻자 홍 전 대표는 “거기는 김부겸·주호영 둘하고 호형호제한 지가 30년이다. 거기는 갈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화 시인의 시비가 있는 곳에서 출사표를 던지겠다고 하니, 대구 수성을 출마가 공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전 대표가 지난 12일 오후 경남 양산시 자신의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

정가에선 이렇듯 미래통합당으로부터 ‘팽’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홍 전 대표의 ‘복수혈전’의 가능성과 그 이후의 시나리오에도 관심을 갖는 분위기다. 홍 전 대표는 양산을 예비후보 사퇴 선언을 할때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더라도 당선 후 당으로 바로 복귀해 협잡공천에 관여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무조건 무소속 당선을 하겠다는 뜻이자, 당선 후 복당해 앙갚음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이준석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무소속 대구 출마를 선언한 홍 전 대표를 향해 “대선주자를 지냈고 다시 대선에 출마하려고 준비하는 분인데 무소속 대통령 후보를 하려고 정치하시는 분은 아니지 않느냐”며 “당을 나갈 때는 마음대로지만 돌아올 때는 마음대로가 아닌 상황”이라고 했다. 통합당 전체 분위기도 홍 전 대표의 공천탈락에 대해선 아쉬워 하면서도 탈당과 무소속 출마에는 부정적인 입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전 대표 공천 불복과 무소속 출마 파장이 보수 진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곱잖은 시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홍 전 대표 구상대로 ‘무소속 출마→당선→당 컴백’ 수순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홍 전 대표로선 ‘홍준표 다운 길’을 가기 위해 대구 출마를 강행하고, 죽을 힘을 다해 싸워 당선된 후 당의 문을 노크하는 시나리오를 택했다. 그 절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상화 시인의 시비까지 찾았다. 아예 그곳에서 출사표를 던지겠다는 계획까지 내놨다.

홍 전 대표 입장이야 알아서 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이번 총선 성공 여부 포인트는 이렇다. ①홍 전 대표 대구 출마에 당위성이 있느냐. 즉, 그가 창녕, 양산을 돌고돌아 대구에 온 것에 대해 유권자들이 너그럽게 받아줄 것인가, 아니면 “누구 맘대로 대구에 오느냐”며 싸늘하게 대할 것인가 ②보수표는 과연 홍 전 대표를 황 대표나 당 공천관리위원회의 희생양으로 볼 것인가. 즉, “홍준표는 팽 당한 것”이라는 연민을 가질 것인가, 아닌가 ③홍준표라는 사람이 향후 대권주자로서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 등이 그의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하나 더, 홍 전 대표가 과연 이상화 시인을 동원해 자신의 현 처지를 ‘빼앗긴 들’로 보고 있는데, 대구의 자랑인 이 시인을 홍 전 대표가 앞세우는 것에 대한 대구시민의 반감 또는 공감 여부도 제4의 변수가 될 것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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