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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서대문갑엔 우상호·이성헌 밖에 없나요?
우상호-이성헌 6번째 리턴매치 뒤집어 생각해 보니…
기네스북감 20년 대결에 “다른 인물 과연 없나” 뒷말
“우 의원·이 전 의원 능력 상관없이 물갈이 미흡한 것”
진보·보수 떠나 ’인물 키우기’ 공천시스템 문제 노출
일각 “20년동안 둘 사이 왔다갔다 투표는 아이러니”
일부주민 “서대문갑 유권자 무시하는 일종의 코미디”
제20대 국회의원선거서대문(갑)에 출마한 이성헌 새누리당 후보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 2016년 3월 24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자 등록을 하고 있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일단 우상호 후보(의원)와 이성헌 후보(전 의원)를 비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이 글을 쓴다. 능력있는 두 후보에 억하심정으로 화두를 던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할말은 해야겠다.

나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도회지 사람을 볼 일은 선거철때 뿐이었다. 가끔 선거때면 높은 분(?)들이 마을을 들르곤 했다. 아버지는 마을 이장이었고, 도시에서 지체 높은 이들이 와서 악수를 해주면 감읍하면서 고개를 숙이곤 했다.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초가집을 부수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던 시기였다. 기름 먹이던 호롱불에서 전깃불로 바뀌던 때였다. 그런데 창호지는 바뀌지 않았다. 구멍 숭숭 뚫린 창호지에 칼바람이라도 들어오면 방은 추웠다. 구멍이 뚫리면 신문지에 밥알 몇개를 붙여 붙이곤 했지만, 신문지도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럴때 선거벽보는 매우 유용했다. 아버지가 감읍하면서 손을 잡았던 그 국회의원 후보의 선거용 팸플릿, 그것은 창호지 구멍을 막아주기 충분했다. 그 팸플릿을 수백장 얻어놓은 터였다. 창호지 구멍이 뚫리면, 그 선거벽보를 창에 붙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그 팸플릿의 주인공은 매번 같은 얼굴이었다. 4년이고, 8년이고 그 얼굴만을 볼 수 밖에 없었다. 한번 국회의원에 당선하면 또다시 당선하고, 또다시 당선하는 일이 빈번했던 시절, 그렇게 난 땜질 창호지 앞에선 똑같은 얼굴을 몇년이고 봐야 했다. 그 얼굴은 지금도 또렷할 정도로 지겹도록 쳐다봤다. 옛날 일이다.

‘숙명의 라이벌’로 불리는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성헌 미래통합당 후보(전 한나라당 의원)가 서대문갑에서 여섯번째 리턴매치를 벌인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미래통합당은 지난 11일 서대문갑에 이성헌 전 의원을 공천했다. 이 전 의원은 통합당 서대문갑 경선에서 64.4%를 획득해 45.6%를 얻은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장을 누르고 공천티켓을 확보했다. 서대문갑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 지역 현역인 우상호 의원이다. 이로써 우 의원과 이 전 의원의 대결구도가 확정된 것이다.

‘싸우면서 정 든다’고 둘 사이가 그럴 것 같다. 우 의원과 이 전 의원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때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내리 다섯판을 겨뤘다. 승부 결과는 우 의원의 3대2 승이다. 이 전 의원은 우 의원을 상대로 16대와 18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우 의원은 17, 19, 20대 총선에서 이 전 의원에게 이겼다. 그러니 우 의원이 역대 전적은 3대2로 앞서 있다.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4월15일)에서 둘이 다시 겨루게 됐으니 제3자 변수가 없는 한 우 의원의 4대2 승리 또는 이 전 의원의 3대3 호각지세 탈환으로 귀결될 것이다.

징그럽기도 하지만 묘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우 의원은 지난 2016년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인물이고, 이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대표적 친박 인사다. 그러니 정치학적으론 ‘물과 기름’이다. 서로의 심장부에 칼날을 겨룰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 참여 여부에 대한 온라인 투표가 실시된 지난 12일 국회에서 한 민주당 권리당원이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

그렇지만 둘 사이의 관계가 더욱 스토리성으로 회자되는 것은 각별한 인연 때문이다. 두 후보는 연세대 81학번 동문이다. 둘다 연대 학생회장 출신이다. 이 전 의원은 1983년 지금의 학생회장 격인 학도호국단장을 했고, 우 의원은 1987년 총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맡았다. 이 전 의원은 군 복무후 대학에 입학했기에 나이는 우 의원보다 4살 많다고 한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만났을때는 우 의원은 이 전 의원을 형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같은 학교에 같은 학생회장을 했으니 둘 사이엔 동질감이 있다고 보기는 충분하다. 정치적으론 ‘정적’이지만 사석에선 호형호제를 하면서 어깨를 걸칠 수 있는 사이라는 뜻이다. 진흙탕 설전을 벌일 사이는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 이번에 서대문갑에 출사표를 던진 두 사람은 페어플레이를 다짐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우 의원은 “20년을 항상 같이 출마하다 보니 경쟁 상대방인 이성헌 전 의원에게 정이 들었고 다른 사람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익숙한 파트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번에 이 전 의원이 정권심판론을 세게 들고나올 것으로 예상하는데, 그래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페어플레이하면서 멋지게 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 전 의원은 “총선에서 여섯번이나 맞붙는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 같은데, 이렇게 보니 참 끈질긴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대 동문으로서 선의의 경쟁을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저는 현장에서 발로 뛰는 사람이기에 말만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낙후된 서대문의 발전을 위해 꼭 승리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고 한다. 우 의원은 지역일꾼론을, 이 전 의원은 정권심판론을 내세우며 선거 전략에 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자웅을 겨루는 서대문갑은 상징성이 작지 않다. 서대문갑은 서대문구 동·남부 지역인 연희동과 충현동, 신촌동, 북아현동, 연희동, 홍제동 등 일대를 포함한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가를 끼고있는 지역구이기도 하다. 이에 상대적으로 젊은(?) 서대문갑은 특정 정당의 텃밭이 아닌 민심의 풍향계 역할을 해온 지역구로도 유명하다. 우 의원과 이 전 의원의 대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구체적으로 지난 16대 총선에서 이 전 의원은 3만4623표(47.01%)를 얻어 우 의원(3만3259표·45.16%)에 신승했다. 하지만 다음 17대 총선에서는 3만6896표(43.81%)를 얻음으로써 3만8795표(46.06%)를 획득한 우 의원에게 졌다. 이후 18대 총선에서 이 전 의원은 3만3463표(51.64%)를 거머쥐며 2만8185표(43.49%)를 얻는데 그친 우 의원을 다시 이겼다. 하지만 19대 총선에서 우 의원은 이 전 의원에게 6499표 차이로 승리를 빼앗았고, 20대 총선에서는 이보다 큰 1만1443표 차이로 낙승을 거뒀다. 20대 총선을 제외하곤 둘 간의 표 차이가 수천표에 그쳤다는 점에서 둘을 ‘영원한 라이벌’로 정가에선 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서대문갑에는 우상호나 이성헌이라는 인물 외엔 다른 사람은 없는 것일까. 언론들은 두 사람의 여섯번째 대결이라는 데만 의미를 부여할 뿐, 그 이면에 대해선 거론하지 않는 것 같다. 우 의원이나 이 전 의원이 대체제를 상상할 수 없는, 누가 봐도 아무런 이견이 없는 걸출한 ‘서대문구의 인물’이라면 상관없지만 20년 넘도록 두 사람의 경쟁구도만을 봐야 하는 일부 서대문갑 유권자들로선 짜증을 낼 일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답은 긍정 반, 부정 반이다. 개인적으로 서대문갑에 거주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그의 말은 이랬다. “우상호나 이성헌 만큼 서대문갑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정치적 능력이나 자질도 엇비슷하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두 사람이 왔다갔다하며 의원을 하는 것 같다”며 “다른 사람들보다는 둘이 낫다고 본다”고 했다. 다른 지인 역시 유사한 답을 했다. 하지만 또다른 지인의 생각은 달랐다.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이나 사람 키우기에 소홀했다고 본다. 우상호나 이상헌이 나눠먹기식으로 국회의원을 해먹었지만, 서대문갑을 진정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 역시 “우 의원이나 이 전 의원의 역량에 대해 폄하할 생각은 없다”면서도 “서대문갑을 상징하는 인물이 20년간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것은 지역 주민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서대문갑 유권자를 무시하는 어찌보면 일종의 코미디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지난 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도심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

정가 인사들의 평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대문갑은 대한민국 주요 대학가가 위치한 곳으로 그곳 학교 출신들이 유난히 힘을 쓰는 구조”라며 “긍정의 시각도 있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을때 더 효과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많다”고 했다. 서대문갑 유권자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진보나 보수나 서대문갑 인물에 대한 세대교체에 게을렀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상호 vs 이성헌’. 20년 이상 둘 사이의 서대문갑 6차 혈투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에 만나본 우 의원이나 이 전 의원은 둘다 다른 의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고 역동적이며 정치적인 꿈도 다부지다. 차세대 리더로서의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정말 이상하다. 여섯번째의 리턴매치에 흥미를 느낄수록 이번에 형성된 여섯번째의 총선 대결 구도 자체는 정말 기네스북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지든 이기든 여섯번째 내리 공천을 받은 우 의원이나 이 전 의원의 능력 검증 이전에 뭔가 진보나 보수 공천시스템에 이상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나 뿐일까. 세대교체나 물갈이, 정치적 역학관계 변화에 따른 신선한 인물을 추구하는 정치권 공천 흐름을 보면 마냥 신기할 뿐이다.

내가 어릴적 수년간 창호지 대신 발라진 선거벽보를 쳐다보며 한 후보자의 얼굴을 지겹도록 본 것 처럼, 서대문갑 어느 동네의 젊은 청년은 20여년간 4년마다 한번씩 우 의원이나 이 전 의원의 얼굴을 봐야했을 것이다. 둘이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닌 것 아닌가. 우 의원과 이 전 의원의 여섯번째 승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정말 일곱번째 리턴매치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이 20년간 지겹도록 싸우면서도 서대문갑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대표적인 사례를 몇개 뽑아주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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