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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脫원전은 ‘눈물의 씨앗’인가…한전 이어 두산重도 ‘허우적’
문재인정부 脫원전·脫석탄 정책 따른 비명소리들
두산중공업 명퇴 신청 이어 이번엔 아예 휴업 검토
탈원전 따른 일자리 감소가 주요원인 “10조 증발” 
노조에선 반발하며 두산중공업은 홍역치르고 있어
한전 실적 사상 최악 이어 민간업체 고통도 본격화
정부책임론 속 일각 “정치권에서 나서서 풀어줘야”
수주 부진으로 경영 위기를 겪는 두산중공업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내 설치된 대형 크레인. [연합]

창원 성산에 공장을 갖고 있는 두산중공업이 비명소리를 냈다. 한마디로 장사가 안돼 그런 것이다.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좀처럼 모멘텀의 기미가 안보인다. 두산중공업 내부는 더 참담해 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명예퇴직에 이어 이번에는 아예 ‘휴업’을 검토하자, 들려오는 것은 한숨소리 뿐이다. 그룹의 맏형격인 두산중공업의 고통에 두산그룹 전체의 위기감까지 엿보인다.

두산중공업의 실적 악화는 경기불황에 따른 비전 실종과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어려움에 따른 것이지만, 문재인정부의 탈(脫)원전, 탈(脫)석탄 정책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두산중공업은 지난 10일 ‘경영상 휴업’을 위한 노사협의 요청서를 노조에 보냈다. 정영인 대표이사(사장) 명의로 전달했다. 경영이 너무 어려우니 휴업을 하자는 제안이다. 정 사장은 이 요청서에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됐던 원자력·석탄화력 프로젝트 취소로 약 10조원 규모의 수주 물량이 증발하며 경영 위기가 가속화했다”고 했다. 현재 경영상의 위기도 자세히 밝혔다. 정 사장은 2012년 고점과 비교해 지난해 매출이 50% 아래로 떨어졌고 영업이익은 17% 수준에 불과한데, 최근 5년간 당기순손실은 1조원을 넘어서면서 영업활동만으로는 금융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노조는 강력 반대했다. 경영난의 책임을 노동자에만 전가하는 일은 안된다며, 이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게 노조 입장이다. 노사간 간극이 이처럼 생기면서 두산중공업은 노사 갈등 분위기로 번지고 있어 이래저래 심각한 상황을 맞고 있다.

초일류는 아니지만 중후장대 산업의 선두주자로 꼽히면서 지난 2000년대까지 ‘좋은 직장’으로 꼽혀왔던 두산중공업에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두산중공업의 고통은 지난달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겉으로 확연히 드러났다. 두산중공업은 지난달 직원 2600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신청자는 500명 가량에 그쳤고, 회사가 염두에 둔 구조조정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아예 휴업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고려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수주 부진으로 경영 위기를 겪는 두산중공업이 명예퇴직에 이어 휴업까지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11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두산중공업 정문 안으로 오토바이가 들어가는 모습. [연합]

두산중공업의 ‘휴업 검토’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에선 두산중공업 창원 공장이 아예 문을 닫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회사 측은 “일부 휴업은 조업에 지장이 없는 수준의 제한된 유휴 인력에 대해서만 시행하는 ‘일부 직원 대상 휴업’일 뿐, 창원공장 전체 또는 특정 부문의 조업 중단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일감이 줄어들면서 유휴 인력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유휴 인력은 원전 등에서의 일감 급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두산중공업은 원전이나 석탄 발전설비를 공급하고 유지보수하는 사업이 주력이다. 풍력이나 가스터빈 등 신재생 에너지 사업 쪽 발굴과 추진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현재까지는 원전과 석탄 사업 비중이 압도적으로 큰 사업구조였다. 정부의 탈원전, 탈석탄 정책이 일관되게 진행되면서 관련 일감이 뚜렷하게 줄어들면서 사업실적 악화가 본격화됐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원전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이 지난 2018년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3·4호기 등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백지화하는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로 입은 손실은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역시 탈원전의 직격탄을 맞은 한국전력(한전)의 사업 부실도 두산중공업에는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다. 한전의 발전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남동발전 등은 두산중공업으로선 주요 고객사다. 하지만 이곳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한전은 2019년 연결기준으로 영업적자 1조3566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보다도 6.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8년(2조7981억원)에 기록한 영업적자를 빼면 사상 최대규모의 적자다. 11년만에 최대 적자를 낸 것이다. 탈원전 고수에 따른 정부정책이 국내 대표 공기업인 한전에 이어 중후장대 산업의 선두주자였던 민간기업인 두산중공업까지 악재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한전의 하청업체, 두산중공업의 하청업체 등까지 고려하면 탈원전에 힘들어하는 기업들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탈원전과 탈석탄 정책에 관련업계가 ‘고사 위기’에 빠지자 업계에선 정치권이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 탈원전이라는 시대적 추세는 인정하지만, 신재생 에너지 쪽이 아직 불투명한 상태에서 무조건 ‘원전 금지’를 고수하는 것은 관련 업계만 희생양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논리다.

두산중공업 쪽에서 보면 감질 나지만 약간의 지원(?)은 있었다. 최근 두산중공업이 명퇴 추진을 밝혔을때, 민주당 소속인 허성무 창원시장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등 경영 어려움에 직면한 지역기업, 두산중공업을 정부에서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는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을 존중하지만 국가, 지역경제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속도 조절을 통한 산업 안정화의 지혜를 보여줬으면 한다”고 했다.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 고수와 관련해 융통성을 발휘해달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허 시장이야 두산중공업 공장이 있는 곳의 시장(창원시장)이니 그런 말을 했겠지만, 여권 인사 중 업계의 고통을 대변해 정부정책에 고언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물론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두산중공업을 고사시키고 있다고만 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원전과 석탄 설비 중심으로 먹고 살아온 두산중공업이 일찌감치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눈을 돌려 사업구조 전환을 도모했어야 하는데, 실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적으로 정부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0가 열린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 두산 부스에서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가운데)과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오른쪽)이 협동로봇을 살피고 있다. [연합]

두산중공업은 이런 견해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전에도 풍력과 가스터빈(LNG) 등에서의 사업다각화에 올인해왔고, 그곳에서 미래성장을 찾겠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의 에너지정책 플랜을 따르다보니 어쩔수 없던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두산중공업의 한 직원은 “국가에너지 사업 상 나라에서 ‘정석 수학’으로 공부하라고 하면, 정석 수학을 들여다봐야 하는게 우리 입장”이라고 했다. 상징적인 말이다. 정부의 에너지정책 청사진을 볼 수 있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뜻하는 것이다. 이 직원은 “정부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원전과 석탄사업이 분명히 들어가 있었고 8차에서는 빠졌는데, 통상 기업의 에너지사업은 10년~20년 앞을 보며 진행한다”며 “갑자기 하루아침에 원전과 석탄을 빼라고 하면 기업으로선 죽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즉, 정부의 전력수급계획은 중장기 플랜을 갖고 만들어야 하며, 관련업계가 충분히 대처할 시간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신재생 에너지 쪽으로 줄기차게 달려왔다는 항변도 나왔다. 두산중공업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2006년 풍력사업에 발을 들어놓은 후 꾸준히 그쪽 개발에 줄달음쳐왔고, 2013년엔 LNG 가스터빈 등 신사업창출에 노력해왔다”며 “나름대로 탈원전, 탈석탄 추세에 발맞춰왔다”고 했다.

그동안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한 당위성은 인정하되, 속도조절은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전문가들의 시각이었다. 정부 출범 초기 때에도 탈원전과 관련해선,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생태계를 만들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밀어부치면 기업은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경고음은 그래서 뒤따랐었다. 글로벌 불황에 10조원 가량의 수주물량 증발에 대우차 이후 19년만에 ‘휴업 벼랑’에 몰린 두산중공업의 현 실상은 이런 경고를 무시한 것에 따른 초래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옛 유행가 가사 하나 떠오른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기사와 별 상관없는 이 노랫말이 불현듯 스치는 것을 보면, 누군가에 탈원전이 뭐냐고 묻는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싶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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