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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진보 대법관, 보수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이 4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했고, 이 때문에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보수적 성향’으로 평가받았다.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엘리트 법관이라는 점도 이러한 평가를 굳혔을 것이다.

실제 조 대법관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일이 많았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청와대가 특검에 제출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며 무죄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도 “병역거부와 관련된 진정한 양심의 존재를 심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고,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사료로 사실을 왜곡했다”는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향적인 판결도 여럿 선고했다. 검찰이 증인신문이 예정된 참고인을 일방적으로 조사한 경우 진술조서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틱 장애’를 시행령상 따로 분류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 등록을 받아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선례도 남겼다.

대법관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게 바람직하다. 선출된 권력인 의회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관을 임명권자 혹은 제청권자에 따라 보수 혹은 진보라고 이분법인 분류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판결을 내놓으면서 여성계의 환영을 받았다. 이 사건 주심 역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명한 권순일 대법관이었다. 이러한 분류는 오히려 ‘누구 편이냐’는 관점에 불과하다. 선출되지 않는 사법부 구성원은 누구의 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소로 눈을 돌려도 이러한 분류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지난해 퇴임한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명으로 임명됐지만, 탄핵심판에서 파면 의견을 냈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과 낙태죄 사건에서 실질적인 ‘캐스팅 보터’ 역할을 하며 위헌 판단이 내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민변 회장 출신으로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사형제가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럼 서 재판관과 송 재판관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보수나 진보 꼬리표를 달아주고 ‘당신의 역할은 이것이니 여기에 맞춰 판결하라’고 할 수는 없다. 조 대법관 역시 개별 사안마다 본인의 양심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을 뿐이다. 다만 어떤 사람을 대법관에 임명할지는 많은 사람이 지금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법원 구성을 어떻게 할지는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고,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영역이다. 대법관 인선은 단순히 고위직 공직자 인사의 영역으로 놔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사회를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가를 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조 대법관은 퇴임식을 마다한 채 아무런 소회도 남기지 않고 36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났다. 코로나19사태 여파를 고려했을 때 행사를 여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가 어떤 법관이었는지는 그동안 내린 판결과 결정으로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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