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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오상의 현장에서]여전한 ‘가짜 박근혜 시계’ 논란

“제가 기념시계 제작보고를 직접 받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아는데, 저건 우리가 만든 시계가 아닙니다. 왜 가짜시계가 저런 자리에 나왔는지 정말 억울합니다.”

지난 2일 오후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행정관 A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이날 열린 이만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총회장의 기자회견을 봤냐는 물음이 나왔다. 채 답을 하기도 전에 “억울하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어느 대통령이든 시계를 허투루 만들지 않습니다. 각자의 생각과 철학을 담아 디자인을 고르는 것이고,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 무늬를 새기는데 쉽게 만들겠습니까? 지난 정부에서 만들어 배포한 시계는 대통령 뜻에 따라 은장시계 한 종류밖에 없습니다.”

교차 확인을 위해 통화한 박근혜 정부 최고위급 관계자 B씨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내가 모르면 대통령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 전해질 만큼 핵심 관계자였던 B 씨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이씨가 차고 나온 시계는 가짜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시계를 소량만 생산해 고가에 거래되는 일이 반복되자 이른바 ‘짝퉁’판매자가 나타났다. 청와대에서 이를 확인해 경찰 수사를 의뢰해 구속하기도 했다”며 “그때 짝퉁 제품과 이씨가 차고 나온 시계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시곗줄 모양과 색, 날짜 표시 여부 등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청와대에 오래 근무했던 현직 관계자조차 “저런 시계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도 이후 정치권은 연일 시계의 진위를 두고 말싸움을 이어갔다. ‘코로나19’사태의 책임이라는 본질마저 묻혔다. 뒤늦게 한쪽에서 “이게 이렇게 커질 문제가 아니었다”는 아쉬움이 나오고 있다. 일부는 “신천지의 장난에 온 나라가 놀아났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정치권이 소모적 정쟁에 빠진 사이 정작 당사자인 이 총회장은 논란 한복판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한국에서 대통령시계는 ‘힘’으로 간주된다. ‘힘깨나 쓴다’는 사람 중 ‘김영삼시계’가 없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심지어 대통령 이름이 새겨진 청와대시계도 아닌 국정원 기념품시계가 ‘절대시계’로 불리며 고가에 거래된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이미 3년 전에 탄핵당하고 구속까지 된 전 대통령의 시계가 문제가 됐다. 여권은 “신천지와 야당의 유착관계를 정식으로 조사해야 한다”며 논란을 선거전에 끌어들였고, 야권은 “정부와 여당이 조작극을 펼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까지 내놨다. 한 정부 핵심 관계자는 “탄핵당한 전 대통령이 아직도 이런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을 줄 몰랐다”는 씁쓸한 농담까지 했다.

“우리 앞에 놓인 진짜 문제는 코로나19 방역”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애초 이 총회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한 것도 코로나19 사태로 악화된 여론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런데 전 대통령의 시계를 놓고 아직까지 싸움을 반복하는 국회를 보면 ‘뭣이 중헌디’ 알고는 있는지 의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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