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배당주 투자 문화가 없었습니다. 자본주의 역사가 짧고 태동 배경도 영미식과 다르다 보니 이유 없이 현금을 쌓아두는 기업이 많았죠. 저희는 현재 받을 수 있는 배당수익률, 즉 배당매력과 향후 회사가 성장하면서 얻는 자본차익 두 가지를 고려하는 투자 원칙을 세우고 지켰습니다.”
2002년 4월, ‘배당투자’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국내 펀드시장에 베어링자산운용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내 최장수 배당주펀드 ‘베어링고배당펀드’의 시작이다. 베어링고배당펀드는 출시 이후 누적 수익률 400%를 넘는 꾸준한 성과로 공모시장 부진에도 3000억원 넘는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김지영 베어링자산운용 펀드매니저는 최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매니저의 기분이나 시황 변동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던 게 펀드의 성공 요소”라며 “20년 가까이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원칙대로 운용하면서 예측 가능한 중장기 수익률이 나왔다”고 말했다.
배당주를 선정할 땐 ▷시장 배당수익률을 웃도는 전통적 고배당주 ▷배당정책이 개선되는 종목 ▷배당성향이 상승하는 배당성장주 ▷역사적 고배당주 ▷보통주 대비 배당매력이 있는 우선주 등 5개 원칙을 고수한다. 이는 수년 간 시장 배당수익률을 평균 0.7%포인트 웃도는 초과 성과로 이어졌다.
2017년 말~2018년 초에는 배당 강화 정책을 발표한 삼성전자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는 성과도 있었다. 보통주 주가가 4만원대, 우선주는 3만원대로 떨어진 시기다. “종목에 편견을 갖지 않고 현금흐름정책, 배당정책 하나하나를 따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바텀업(bottom-up)’ 리서치 역량도 그의 자랑거리다. 베어링자산운용의 주식운용 부문 14명 중 무려 9명이 전담 애널리스트다.
김 매니저는 “매일 진행하는 모닝 미팅에선 전일 미국 시장에 대한 얘기도 안 한다. 종목 하나에만 집중한다. 수익 추정, 밸류에이션 등 심층 분석에만 파고든다. 주가만 보면 경도되서 따라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5%룰 완화로 배당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데 대해 그는 “국민연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고,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상승되고 한국 증시 밸류에이션이 재평가되는 방향으로 힘을 쏟을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는 “베어링자산운용은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전부터 중장기적으로 기업들에게 배당정책 등에 대해 건의하는 등 신뢰를 쌓았다”며 “기업들도 오너 3세, 4세로 넘어가면서 배당으로 정정당당하게 받겠다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 간 대리인 문제도 배당을 통해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연말 배당을 앞두고 배당주, 배당주펀드에 관심 갖는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배당주가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을 때 투자하면 분명히 다시 페이백(보상)한다”며 중장기 접근을 조언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변동성이 커진 시장을 보면서는 “공포에 매도하거나 낙관에 매수하는 것보다는 기업 하나하나의 기업가치에 관심을 가지며 포트폴리오 배당매력을 유지한다면 좋은 기회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강승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