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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총리 되자마자 도는 ‘정세균 대망론’, 그 근거와 한계는
종로 출마 접고 총리직 받아들인 정세균
기업활력 등 성과 있으면 인지도 올라갈 듯
‘2인자 총리’ 덫에 걸릴수도 있다는 시각도
이낙연 전 총리 인지도에 비해 현재는 약세
‘책임총리’ 강단 보이면 선전 가능성도 커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무총리가 20일 오후 청와대에서 첫 주례회동을 마친 뒤 상춘재를 나서고 있다. [연합]

지금은 지리멸렬한 보수 정당이 큰소리 땅땅 치던 2008년 말이었을 것이다. 이명박정부 때였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놓고 진흙탕 정국이 벌어졌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밀어부쳤고, 야당인 민주당은 결사반대에 나섰다. 이에 국회는 고성과 삿대질, 몸싸움 등의 극한 대치상황이 계속됐다. 당시 민주당 대표는 정세균이었다.

“정세균은 그런대로 얘기가 돼요. 합리적인 성품이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나머지 야당 사람들과는 얘기가 안돼요.”

어느날 청와대 모 수석과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얘기를 한다. 한미 FTA를 놓고 여야가 격렬하게 대치하고 있고, 대치 상대방인 야당의 대표가 정세균인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기업도 해보고, 산자부 장관도 해봐서 그런대로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성격도 온화하고요.”

여야가 사생을 걸고 극단으로 싸우고 있는 판에 야당 대표에 후한 점수를 주는 그의 견해가 더 궁금해 한가지 물었다. “그럼 정치인 정세균 가능성을 어떻게 보세요? 향후 대선주자도 가능할까요?”

그가 잠깐 생각을 하더니 내놓은 답은 이랬다. “사람 좋기는 한데, 독한 성격이 못돼서…. 그렇게까지는 좀…. 대망론을 이루는 정치인은 정말 집요한 권력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정세균 대표는 좀 그래요.” 합리적 성품인데다 온화한 성격으로 나름대로 괜찮은 파트너이긴 한데, 권력의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대권의 향후 견제자로서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얘기가 있은후 10년이 더 지났다. 이후 정세균은 ‘정치1번지’라는 서울 종로에서 19대,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종로의 터줏대감으로 정치인으로선 순탄한 길을 걸어온 셈이다. 그리고 10여년전의 민주당 대표였던 정세균은 문재인정부의 총리가 됐다. 이낙연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런 정세균 총리에 정가는 물론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의 향후 그의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관측이 더해지면서 말이다.

정 총리는 기업인 출신인데다 산자부 장관까지 거친 이로 기업의 입장을 이해하는 인물인만큼, 기업 경영 활력을 제고하는 방안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 총리는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주례회동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통한 경제 활력 회복, 목요대화를 통한 새로운 협치와 소통, 공직사회 혁신을 향후 주요 국정운영 방향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정 총리로선 경제 총리, 통합 총리, 혁신 총리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문 대통령 역시 정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정 총리를 임명하면서 책임총리로 소신있게 일하라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내놓은 바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서 정가 일각에선 때아닌 ‘정세균 대망론’이 거론되고 있다. 총리로서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도 전에 이런 얘기가 도는 것은 전임자 이낙연 전 총리와 관련이 크다. 이 전 총리는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수개월째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인물이다. 문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총리직에서 놔주면서 좀더 큰 정치를 하라는 뜻을 몇번이나 강조한 바 있다. 총리직을 통해 인지도를 더 넓히고 대선주자급 스펙트럼을 넓힌 이 전 총리의 사례를 보면 정 총리 역시 유사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일각의 정치권 인사 논리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낙연 전 총리에 이어 총리직을 무난히 수행하면 향후 대권주자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9단이라는 박지원이 이런 분위기에 대한 논평을 놓칠리가 없다. 박지원 대안신당 의원은 앞서 정 총리가 임명장을 받기도 전에 한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세균의 (대선 도전)길은 살아있다”고 했다. 앞으로 대선이 있으려면 최소한 2년이 남아있는데 전직 총리 이상으로 일을 잘하면 지지도 상승과 인지도 제고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박 의원은 “국무총리가 되면 꾸준히 그걸 계산할 것이고, 그러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엔 반대의 시각도 뒤따른다. 정 총리가 생각보다 총리직의 원활한 수행에 제약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 총리에게 책임총리의 권한을 주겠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집권말기까지 헤게모니를 놓치 않으려는 생각이 강한만큼 정 총리의 위상과 역할엔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정 총리는 ‘2인자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문재인정부가 재벌 규제 등의 기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재계와의 소통과 화합을 시도하려는 정 총리의 구상은 쉽게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여당 핵심 인사들의 현기조인 대기업 규제 흐름을 정 총리가 온몸으로 저항하고, 친기업 정책으로 일시 전환하는 데는 어려움이 클 것이라는 견해다. 이에 정 총리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역임했기에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야당의 비판을 무릎쓰고 총리직을 받아들인 큰 뜻(?)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더불어민주당 사무실을 방문,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

정 총리 역시 이를 최대 고민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전 총리의 여의도행을 앞두고 총리감으로 김진표 의원이 물망에 올랐을때만해도 총리직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종로 총선을 준비하면서, 종로에서 몸을 불태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온 것이다. 종로 수성 뜻을 확고히 해온 것은 모자랐다고 지적을 받아온 권력의지에 대한 의욕을 끊임없이 주유해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총리직을 거친 이들이 대권행에 성공한 이가 없다는 점은 정 총리가 장고한 배경이었을 것으로 해석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권을 거머쥐었지만, 그 대선이 있기전인 2년여동안 대선주자 설문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해온 이는 고건 전 총리였다. 개인 사정이 있었든, 권력의지가 모자랐든간에 어쨌든 고건 전 총리는 일찌감치 드롭했다. 당시 고건 전 총리의 자진 낙마를 두고 총리직에 대한 영원한 2인자 데자뷔가 재현됐다는 말이 돌았었다. 이런 정치 구도를 모를리 없는 정 총리로선 종로에서 당당히 선거에서 이기는 편이 향후 대선 잠재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 총리로선 총리직을 잘 수행하면서도 향후 대선판의 구도를 머릿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입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현직 총리를 두고 ‘두 패’를 가동할 것이라는 얘기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재 향후 여권의 대선주자급으로 거론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임종석 청와대 전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이낙연 전 총리, 정세균 총리 등의 대선주자군을 리스트에 올려놓고 일일이 앞으로 저울질 할 것이라는 것이다.

두 전현직 총리를 비교하자면 아직까지 판단은 섣부르다. 이낙연 전 총리는 조직은 없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올해 총선에서 직접 출마하든, 선대위원장을 맡든 성과가 좋으면 대선주자행 합류는 따논 당상이라는 평가다. 정 총리는 조직은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인지도 제고는 그래서 정 총리의 숙제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분명한 것은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가 총리직을 덥석 받아들임으로써 국회 위상을 훼손했다는 야당의 비판을 받고 있는 정 총리가 모두가 인정할 만한 총리직 수행으로 이런 잡음을 불식시킬 수 있을지가 당장의 과제라는 점이다. 길다면 긴 시간, 짧다면 짧은 향후 대선까지의 남은 기간에 정 총리의 머릿속은 한층 복잡할 수 밖에 없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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