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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주운전 단속 르포] 단속시작 되자 줄줄이 ‘삐~’… “한번만 봐주세요”
“6분 만에 첫 적발은 2개월 만에 신기록”··· 면허 취소만 2건

2019년 12월 16일 오후 10시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에서 관악 교통정보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 집중단속을 하고 있다. 다음날인 17일 오전 1시까지 이어진 총 3시간의 음주단속에서 감지기가 '삐-' 소리를 내며 빨간색이 된 것은 총 3번으로, 처분 결과 면허 취소 처분 2건·훈방 조치 1건 등 총 2건의 음주운전 입건이 이뤄졌다. [사진=박상현 기자]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내리세요. 내리시라고요, 파킹해주세요!” 2차선 위 흰색 SUV 운전석 창문을 내린 운전자가 음주 감지기에 입김을 불자 센서등의 파란빛이 “삐-” 소리를 내며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곧바로 이어진 다른 감지기에도 입김을 불자 파란빛이 곧 소리를 내며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음주 신호였다. 두 감지기가 모두 빨간색이 되자 경찰들은 운전자를 향해 소리쳤다. 경찰의 내리라 지시에도 차가 슬금슬금 앞으로 나아가자 경찰들은 차 앞을 가로 막고 차 앞문을 열어 운전자를 내리게 했다. 차에서 내린 30대 남성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 수치는 0.037%였다. 윤창호법 도입 후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치다.

지난 16일 오후 10시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남부순환로 앞. 헤럴드경제는 경찰의 협조를 얻어 음주운전 단속 동행취재에 나섰다. A씨가 적발된 시각은 오후 10시 29분. 본격적으로 음주 단속에 나선지 6분이 채 경과한 후였다. “빠르면 10분에서 15분, 늦으면 1시간에서 2시간 만에 첫 적발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던 관악교통정보센터 소속 강동희 경사는 “6분이면 최근 2개월 중 매우 빨리 잡힌 편”이라며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2019년 12월 16일 오후 10시 29분 이날 단속 시작 6분 만에 처음으로 적발된 A씨가 음주 감지기에 입김을 불고 있다. 이날 A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37로 면허 정지 수준이지만, 기존 음주운전 전과 2개가 있던 A씨는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 [사진=박상현 기자]

이날 A씨는 서울대입구 쪽에서 회식을 마치고 운전대를 잡아 음주단속에 적발됐다. A씨는 현장에서 “소주 2~3잔 밖에 안 마셨다”고 진술했다. A씨는 윤창호법 도입 이전 두 번의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다. 윤창호법 도입 전이라면 이날 A씨의 혈중 알코올농도인 0.037은 훈방 처리 되어 삼진아웃제 안에서 면허는 지킬 수 있었겠지만, 법 도입 후 정지 수준, 투스트라이크(2회 이상) 아웃제로 A씨는 이날 면허가 취소됐다.

앞서 오후 10시 12분 관악교통정보센터 소속 경찰관 4명은 “시작하자”는 박민국 경위(팀장 직무대행)의 말에 순찰차 트렁크에서 주황색 삼각뿔 모양 ‘라바콘’을 꺼내어 차선 위에 두기 시작했다. 경찰은 4차선을 막아 차의 움직임을 1~3차선으로 유도했다. 해당 단속 구간을 지나며 본격적인 단속에 앞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들의 모습을 살피던 운전자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묻어났다. A씨의 적발 후 사당역에서 총알택시 단속을 하던 김장선 경장의 합류로 이날 단속 인원은 총 6명으로 늘어났다.

2019년 12월 1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남부순환로에서 관악 교통정보센터 소속 강동희 경사가 음주운전 집중단속을 위해 '라바콘'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박상현 기자]

단속은 한 사람이 적발되면 잠시 단속을 멈추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0시 41분. A씨 적발 후 다시 단속이 시작됐다. 10시 49분. “삐-” 소리가 다시 들렸다. 흰색 경차에서 내린 20대 여성 회사원 B(25)씨의 얼굴은 불콰한 기색 없이 창백했다. 면허증을 제시하란 말에 다시 차로 돌아가던 B씨 뒤로 술 냄새가 풍겨왔다. 이날 B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07로 면허가 취소됐다. 박 경위는 “(B씨가) 소주 3~4잔 밖에 안 먹었다고 얘기했지만 실제 0.107은 소주 1병 반 정도 마셨을 때 수치다”라고 말했다. 신림동에서 회식을 하고 운전 중 적발된 B씨는 혈중알코올농도 측정 후 면허취소 수준이 나오자 두 손을 모으고 연신 “한 번만 봐 달라, 기록에 남기지 말아 달라”며 경찰에게 사정했다.

2019년 12월 16일 오후 10시 49분 음주운전 집중단속에 적발된 B씨가 차에서 내려 관악교통정보센터 한호진 경장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이날 B씨의 혈중 알코올농도 수치는 0.107로 B씨는 면허 취소 처분을 받았다.[사진=박상현 기자]

11시 28분. 다시 단속이 재개됐다. 음주 단속 중 애꿎은 사람들도 적발이 되었다. 1차선에서 안전모 미착용 오토바이 운전으로 적발된 운전자 C(27)씨는 “한 번만 봐 주세요”라며 사정했지만 범칙금 통고처분을 받았다. 11시 46분. 2차선에서 자동차 앞 번호판이 없어 적발된 30대 여성 D씨는 “방금 조금 전 사고가 나서 번호판이 떨어졌다”며 흰색 외제차 조수석에서 번호판을 꺼내 보여주었다. 김 경장은 사고 신고 접수 조회 후 조금 전에 사고가 났음을 확인하고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빨리 번호판을 다시라”며 D씨를 보냈다. 단속 중 한 택시 운전자는 감지기에 입김을 세게 불고는 “평생을 술을 안 먹는 사람이야”라며 당당히 외친 후 지나가기도 했다.

11시 52분. 2차선에서 검은색 세단을 운전하던 E(54)씨가 입김을 불자 또다시 “삐-”소리와 함께 감지기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E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는 0.028로, 취소 기준인 0.03에 미달해 훈방조치 되었다. E씨는 “5시간 전 와인 한 병을 강남역에서 마셨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경사는 “술 도수에 따라 나타나는 수치가 다르다”며 “와인은 저렇게 훈방 정도가 나오기도 하지만 소주는 한두 잔만 마셔도 취소 수치가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단속은 예정되었던 종료 시간 자정을 지나 오전 1시까지 이어졌다. 이날 단속에 나선 경찰 6명 중 유난히 키가 컸던 한호진 경장은 표정 없이 “법이 바뀌어도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한다”고 말했다. 한 경장을 비롯한 다른 경찰들은 모두 “실례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단속을 이어갔다.

17일 오전 12시 29분. “삐-” 소리 후 싸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1차선에서 감지기에 입김을 분 은색 SUV 운전자가 내리란 지시에도 그대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경찰들은 황급히 순찰차에 올라타 해당 차량을 추격했다. 약 10분 후 단속 장소로 복귀한 김 경장은 “추적 결과 도망이 아니라 술을 안 마셨기 때문에 감지기에도 별 일이 없는 줄 알고 출발한 것”이라며 “술 냄새도 나지 않았고 흔히 발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난곡사거리 교차로까지 400m 정도를 쫓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단속을 마친 후 강 경사는 “오늘은 적발 건수가 좀 있는 편”이라며 “전체적으로 봤을 땐 윤창호법 도입 이후 주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야간에 단속을 하면 매일 한 두 건씩 나왔는데 요즘은 안 나오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16일 오후 10시부터 17일 오전 1시까지 이어진 총 3시간의 음주단속에서 감지기가 '삐-' 소리를 내며 빨간색이 된 것은 총 3번으로, 처분 결과 면허 취소 처분 2건·훈방 조치 1건 등 총 2건의 음주운전 입건이 이뤄졌다.

강 경사는 “예전엔 도망가거나, 가다가 사고가 나거나 인명피해가 있는 사고가 난 경우에도 적발 보고만 하고 집으로 귀가시켰는데 요즘은 바뀌어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추세”라고 했다. 이어 “술 드시는 분들이 각성을 많이 해야 한다”며 “자기는 정신이 멀쩡하다고 운전을 하시곤 하는데 일반 시민들이 볼 때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운전하시다가 자기 자녀나 배우자, 부모님과 사고가 나게 되면 그 고통은 참 클 것”이라며 “그런 걸 한 번 쯤 생각해보시면 음주운전을 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라고 강조했다.

한편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2014∼2018년)간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전국에서 모두 10만7109건 발생했다. 이는 하루 평균 59건꼴로, 이 기간 전체 교통사고(110만9987건)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은 9.6%였다. 또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5년간 숨진 사람은 2441명, 다친 사람은 18만6391명에 달했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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