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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자경 명예회장 별세]재계 최초의 무고승계…마지막까지도 소탈했던 재계의 큰 어른
70세에 전격 은퇴…구 명예회장에게는 ‘마지막 경영 혁신’
퇴임 후 회사일 관여 않고 ‘자연인’ 삶…버섯연구에 매진
LG연암학원 설립 등 교육 사업에도 몰두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향년 9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구자경 LG 명예회장은 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성과 이외에도 재계의 ‘큰 어른’으로 족적을 남겼다. 한국 재계 사상 처음으로 생전에 회장직을 스스로 내려놓은 데 이어, 버섯연구를 비롯한 취미, 자연과 함께하는 사회공헌활동에 매진하면서 은퇴 후에도 많은 경영인들의 귀감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LG에 몸담은 지 45년, 선친 구인회 LG 창업주의 타계로 회장을 맡은 지 25년 만인 1995년 2월 자진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는 국내 기업사에서 처음으로 ‘무고(無故, 아무런 사고나 이유가 없음) 승계’ 사례로 기록되며 재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재계 관행으로는 70세에 불과했던 구 명예회장이 은퇴를 결정한다는 것은 파격이었다. 하지만 구 명예회장은 경영진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이같은 결단을 실행에 옮겼다.

구 명예회장이 회장에서 물러날 때 창업 때부터 그룹 발전에 공헌해 온 허준구 LG전선 회장을 비롯해 구태회 고문, 구평회 LG상사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구두회 호남정유에너지 회장 등 창업세대 원로 회장단도 ‘동반퇴진’을 단행했다.

LG그룹에 따르면 고인은 은퇴를 결심하면서 멋진 은퇴보다는 ‘잘 된’ 은퇴가 되기를 기대했다. 구 명예회장에게 은퇴란 본인이 회사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경영 혁신’이었던 셈이다.

고인은 훗날 “은퇴에 대한 결심은 이미 1987년 경영혁신을 주도하면서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차기 회장에게 인계한다는 것이 경영권 승계에 대한 내 나름의 밑그림이었다. 그래서 내 필생의 업으로 경영혁신을 생각하게 됐고, 혁신의 대미로서 나의 은퇴를 생각했던 것이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구 명예회장 퇴임 후 2000년대 들어 3대에 걸쳐 57년 동안 이어진 구·허 양가의 동업도 아름다운 이별로 마무리했다. 57년간 불협화음 없이 일궈온 구씨와 허씨 양가의 동업관계는 재계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후임 경영진에게 부담을 안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구인회 창업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라는 말에 따라 후진들의 영역을 확실히 지켜주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 결심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이에 그는 경영에서 물러난 후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연암대학교의 농장에 머물면서 버섯연구를 비롯한 자연과 어우러진 취미 활동과 사회공헌활동에 전념하며 그룹의 경영엔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은 또 교육 분야에 각별한 열의를 쏟았다. 그는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 뿐”이라는 말을 늘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969년 설립된 LG연암문화재단의 이사장으로 해외연구 지원 사업을 펼치며 젊은 대학 교수들이 해외에서 견문을 넓히고 연구의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 지난 1973년에는 학교법인인 LG연암학원을 설립하는 등 교육 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 왔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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