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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난에, 화재에…종로 돈의동 쪽방촌 사람들 겨울나기
“불나면 한시간이면 잿더미 돼요” “벗어나고 싶지만 못그래 답답”
돈의동은 좁은 골목에 소방차 못 들어오는 화재경계지구

2019년 11월 22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입구에 ‘화재경계지구’ 표지판이 붙어 있다. [사진=박상현 기자]

[헤럴드경제=박상현 기자] “불나면 다 타버려서 한 시간 안에 완전 잿더미 돼요. 옛날에도 불이 크게 두 번인가 났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거주하는 A(49)씨는 의자 없이 쭈그려 앉아 설거지를 하다 일어나 짧게 탄식했다. A씨는 “벽돌로 지은 집이면 불이 나도 약간 시간적 여유가 있겠지만 저 밑으로는 전부 판자 나무로 돼서 불이나면 위험하다”며 “집 주인이 보일러를 틀어주지만 세지 않아 뜨끈뜨끈하진 않다”며 다가올 겨울을 걱정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을 찾았다. 주민들은 겨울 준비가 한창이었다. 쪽방촌에서 사랑방으로 쓰는 공간 안에는 쌀 포대와 김장 김치가 담긴 스티로폼 상자가 천장까지 닿는 높이로 여러 줄 쌓여 있었다. 주민들은 집 안에서도 패딩 점퍼를 입고 있었다. 주민 이재연(54)씨는 “온풍기나 전기장판 같은 건 사용 안 하고 집 주인이 때 주는 불로 생활한다”며 “그래도 겨울엔 춥다. 겨울엔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10년 정도 살았다는 최성진(49)씨는 “벌써 보일러를 틀었다”며 “뜨거운 물이 팡팡 나오진 않지만 집집마다 샤워실도 있고 불편하지만 월동준비에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쪽방촌은 입구부터 통행로 전체가 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목재건물이 밀집한 지역의 경우 특히 그 정도가 심했다. 목조건물이 밀집한 지역 끝 쪽엔 지난 2018년 화재 사고로 새까맣게 타 버린 건물이 남아 있었다. 지난해 1월 라면을 끓이다 이불에 불이 옮겨 붙어 발생한 화재로 건물 1층에 살던 노인이 사망한 그 집이었다.

돈의동 쪽방촌은 ‘화재경계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화재경계지구란 소방기본법 제13조에 의거 화재 발생 시 인명 및 재산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어 지정 관리하는 지역을 뜻한다. 돈의동 쪽방촌은 집집마다 소화기가 설치돼 있었고 소화기 사용법 안내 그림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화재 불안 요소는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주민들은 집 밖을 지나는 전선 위에 젖은 빨래를 널어 말렸다. 전선은 집집마다 이리저리 뒤엉켜 있었다. 전선은 건물을 타고 옥상으로 향하거나 맞은편 집까지 이어졌다. 굵은 전선다발이 골목을 지나는 곳도 있었다. 군데군데 불에 쉽게 탈 것 같은 천막 지붕도 눈에 띄었다. 천막 지붕 아래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이나 쉽게 불에 타는 나무로 된 집 앞 담배꽁초들도 눈에 띄었다.

주민들도 불안해했다. 이곳에서 30년 이상 거주했다는 60대 B씨는 “여긴 불법주차가 많고 길이 좁아서 소방차가 못 들어온다”며 “전에도 불이 잘 났었는데 소화기보단 소방차가 아무래도 더 안심이 된다”고 했다. 이어 “아침부터 술 먹는 사람도 많다. 지병으로 죽은 다음 한참 지나서야 죽은 사실을 알게되는 경우도 많다”며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데 잘 안 돼서 답답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이곳에 거주한다는 정모(34) 씨는 “저도 여기 안 산 지 꽤 됐는데 아무래도 낙후가 된 지역이다 보니 화재 불안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종로구도 돈의동 쪽방촌 관리에 만전이다. 언제든 큰 불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화재취약지구기 때문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화재경계지구로 지정된 돈의동 쪽방촌은 지역 주민과 종로소방서 합동으로 주기적으로 비상 대피훈련, 비상벨 작동 요령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히 돈의동은 올해 5월께 신속한 신고와 대피를 위한 비상벨과 번지수 구분을 위한 재난식별도로를 종로구청과 같이 추진해 설치를 마쳤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재난안전과 관계자는 “종로구 쪽방촌은 돈의동과 창신동 두 곳이 있다. 불이 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특히 겨울철 화재 예방 차원에서 콘센트나 가스레인지 등 화재 발생 요인에 대해 정비와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며 “화재 발생시 긴급 조치를 위한 소화기를 매년 200개 정도 지급을 한다”고 덧붙였다.

po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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