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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일한의 住土피아] 글로벌 PIR로 따져본 서울 집값 거품론
최근 1년 서울지역 신규분양
웬만한 아파트는 모두 ‘로또’
서울 소득대비 집값 지수 20.7
뉴욕은 11, 베네수엘라 173
거품여부 판단 지표로는 부족

올 9월 기준으로 서울 미분양 아파트는 207채가 있다. 서울에서도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은 지역의 나홀로 단지 등에 남은 일부다.

서울엔 967만명이 주택 289만채에 살고 있다. 이중 아파트는 168만채다. 1000만명 가까이 사는 주택시장에 미분양이 200채 정도라는 건 사실상 웬만하면 지어놓으면 다 팔린다는 이야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년간 서울 분양가가 집값보다 무려 4배 이상 오르며 기존 주택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며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는 고분양가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상한 건 최근 1년 사이 서울에서 분양한 웬만한 아파트는 모두 ‘로또’로 통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통제해 시세보다 쌌기 때문이다. 인기 많은 강남 지역 단지는 새 아파트 분양가와 시세와 차이가 수억원씩 됐다. 정부는 고분양가라고 하는데 청약자는 ‘로또’라고 부르는 기이한 현상이 서울 아파트 시장에 이어지고 있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는 근거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지표가 ‘PIR(Price to Income Ratio)’이다. 소득 대비 집값이 얼마인지 나타내는 비율이다. 주택가격을 연간 소득으로 나눠 계산한다. 언론에서 ‘몇 년 벌어서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자주 보도하는 그 지수다.

국가·도시 비교 사이트 ‘넘베오’에 따르면 2019년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PIR은 20.71이다. 서울 중간 소득자가 연봉을 20년 이상 모아야 서울 중간가격대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감정원이나, KB국민은행 등 국내에서 산정하는 PIR과 연소득 산정 기준 등이 달라 수치가 조금 더 높게 나온다. 넘베오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미국 뉴욕(11.08), 일본 도쿄(13.83), 캐나다 뱅쿠버(15.26), 독일 뮌헨(16.1) 보다 높다. 서울에서 중간 계층이 집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이 뉴욕이나 도쿄보다 훨씬 더 걸린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정말 서울 집값은 버블 붕괴가 임박한 시한폭탄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서울보다 PIR이 높은 도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베네수엘라(173.36), 홍콩(49.38), 중국 베이징(46.18), 상하이(42.8), 인도 뭄바이(42.8), 대만 타이페이(28.65), 네팔 카트만두(27.71), 태국 방콕(25.15), 베트남 호치민(24.83), 싱가포르(23.13), 영국 런던(21.85), 프랑스 파리(21.39), 필리핀 마닐라(21.24) 등이다.

여전히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는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의 주요 도시나 인도의 핵심 도시의 PIR은 우리의 두 배인 40이 넘는다. 안정적인 경기 흐름을 보이는 싱가포르나,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의 PIR도 우리보다 높다.

사실 대체로 못사는 나라일 수록 PIR이 높다. 영국 보험사 타워게이트에 따르면 파푸아뉴기니(181.6), 콩고(153), 감비아(87), 우간다(59.4), 세네갈(53.6) 등 아프리카나 중남미 지역 등의 PIR은 우리보다 서너배 이상이다. 이유는 낮은 소득이다. 소득이 낮으니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별 PIR은 제각각이다. 미국 인터넷 금융 정보 사이트 뱅킹스트리티지에 따르면 올 1분기 기준 미국 샌프란시스코 PIR은 9.1이다. 로스앤젤레스(7.8), 샌디에고(6.5), 보스톤(4.3), 애틀란타(3.3), 시카고(2.7), 디트로이트(2.1), 클리블랜드(1.7) 등의 순이다. 같은 나라에서 이런 차이가 나는 건 규제때문이라고 한다. 중서부와 남부지역 등 PIR이 낮은 지역은 대부분 층고나, 용적률 규제가 덜하다. 그만큼 주택이 많이 지어지니, 집값은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다.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고임금을 받으니 PIR이 낮아진다.

서울의 PIR로 주택시장 거품 여부를 판가름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 집값이 정말 과도하게 비싸서인지,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서다. 일단 우리의 비교 대상으로 삼는 OECD 국가에 비해 한국의 임금 수준이 낮은 건 팩트다. OECD 34개 국가 중 한국 평균 임금은 23위를 차지한다. 우리보다 임금 수준이 월등히 높은 일본, 영국, 캐나다, 미국상, 호주 등과 비교해 PIR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서울에선 새 아파트를 공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제가 심하다. 서울 주택의 거의 유이한 공급 방식인 재건축, 재개발을 온갖 규제로 막아 놨기 때문이다. 특히 강남 지역은 갈수록 IT산업, 교통, 교육, 문화 등 모든 여건에서 압도적으로 좋아지고 있는데, 새 아파트는 희소해지고 있다. 정부 규제로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재건축, 재개발 대상 아파트의 노후화는 계속 심각해 진다.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 가계는 아직 대출여력도 있다. 한국 가계 대출이 심각하다고 하지만, 연체율은 0.5%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20년만에 최저 수준이라고 하는 데도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4%를 넘는다. 분양가까지 시세대로 정하지 못하도록 규제를 하겠다는 마당에 서울 주요지역 주택 공급은 한동안 줄어들 게 뻔하다.

PIR이 높으니 조심하라고? 서울 새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지속되는 한 PIR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출 여력이 충분한 부자라면 서울 주택처럼 확실히 오를 만한 대상을 어떻게 포기하겠나.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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