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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하얼빈 의거 110주년, 안중근 의사를 다시 생각한다
‘갈등과 분열의 대한민국, 안중근 정신을 되새기라’
중국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 포즈를 취한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장부가 세상에 처함이여 그 뜻이 크도다. 때가 영웅을 지음이여 영웅이 때를 지으리로다.”

‘장부가’로 알려진 이 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 척결을 계획하고 중국 하얼빈에 도착한 후 1909년 10월 23일 늦은 밤 써서 당시 하얼빈 한인회장이던 김성백의 집에 남긴 것이다. 이 시에서는 거사에 대한 생각과 의로운 죽음을 앞둔 서른살 청년의 기개와 인간적인 고뇌가 엿보인다.

제2회 하얼빈 안중근 동양평화 문화축제 주관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 필자는 안중근 정신을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 110년전 안 의사가 이토를 저격한 하얼빈역 플랫폼이 내려다 보이는 쿤룬호텔에 숙소를 정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창밖으로 의거 장소를 보면서 상념에 잠기곤 한다.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던져 거사를 했던 서른살 청년 안중근과 남북으로 동서로 갈린 것도 모자라 좌우로 갈려 무한투쟁을 일삼는 대한민국의 못난 후손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

지난 23일 오전 9시 한국에서 온 공연단과 함께 하얼빈역에 새롭게 단장해 개관한 안중근 기념관을 찾아 추모의식을 하며 못난 후손의 한 사람으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렸다. 남북통일과 민족의 화합을 위해서라도 10월 한달간 만이라도, 아니 오늘 안중근 의거 110주년인 10월 26일 하루 만이라도 안중근 정신을 되새기며 남북과 좌우가 화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 비단 필자 만의 바램일까?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11일을 머물렀다. 거사를 준비하고 의거를 한 뒤 체포돼 뤼순으로 떠날 때까지 하얼빈에서의 11일간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서른살 청년의 기개와 고뇌가 생생히 느껴진다.

안중근은 1909년 10월 21일 오전 8시 50분 동지 우덕순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밤 9시 25분 중국측 국경인 수분하에 도착해 역앞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 유경집을 찾아가 그의 아들 유경하에게 러시아어 통역을 요청했다.

이어 22일 저녁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778km를 1박 2일에 걸쳐 달려온 것이다. 긴 여정 끝에 안중근 일행은 하얼빈 한인회장 김성백의 러시아식 주택에 여장을 푼다.

23일 오전 안 의사는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우덕순 등과 사진을 찍는다. 의거를 앞둔 신변정리인 셈이다. 그의 깔끔한 성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안 의사는 이날 이토의 도착정보를 파악해 25일 오후 11시 장춘 인근 관성자역을 출발한 이토가 26일 오전 9시 40분경 도착할 것으로 추정하고 거사를 준비한다. 이날 밤 그는 ‘장부가’를 쓴 것이다.

24일 오전 안 의사는 김성백의 집 근처에 있는 하얼빈공원(현재 조린공원으로 이름을 바꿈)을 산책하며 거사 계획을 세운다. 결론은 일본이 통제하는 지역인 관계로 경계가 상대적으로 덜 삼엄할 것으로 예상되는 관성자역에서 거사를 하기로 했으나, 차비가 부족해 할 수 없이 채가구역에서 거사를 하기로 했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등 3명은 채가구역에 도착해 역 지하에서 잠을 자며 이토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이 새벽이라 어두운 데다 이토가 역에 내리지 않으면 거사가 어렵다고 판단해 25일 우덕순과 조도선을 남기고 최종 거사 장소인 하얼빈으로 되돌아온다.

운명의 날인 26일 새벽 안 의사는 기도를 올리고 8연발 권총을 품에 넣은 채 김성백의 집을 출발해 하얼빈역에 도착했다. 안 의사는 일본인 행세를 하며 삼엄한 경비를 뚫고 환영대열 속으로 들어갔다. 오전 9시 30분 경 이토가 환영대열을 사열하는 순간 안 의사는 러시아 군대 뒷편으로 다가가 3보 앞으로 다가온 이토에게 평화의 염원을 쏘았다. 정확히 3발이 이토에게 명중했고, 안 의사는 4발을 더 쏜 뒤 공중으로 권총을 던지고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된 안 의사는 일본측의 요구로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관 지하 감옥으로 옮겨져 혹독한 취조를 받은 뒤 11월 1일 오전 11시 25분 영원한 이별을 향한 운명의 열차를 타고 뤼순감옥으로 이송된다.

안 의사가 11일간의 의거 여정을 보낸 하얼빈에는 안 의사 관련 유적지가 많다. 특히 그가 산책을 하던 조린공원에는 안 의사의 유묵을 새긴 바위가 있어 공원을 찾는 시민들에게 안 의사를 떠올리는 명소가 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를 위해 거사를 했음을 알리기 위해 뤼순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지만, 일제의 사형집행이 당겨져 완성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주장을 담은 서론을 통해 우리는 그가 진정한 평화주의자이며 선구적 이론가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가족에게 자신이 죽거든 하얼빈공원에 묻었다가 광복이 되면 고국땅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남북으로 갈린 못난 우리 후손들은 순국 109년이 되도록 안 의사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채 서로 반목하고 있다. 의거일인 26일에도 서울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경쟁하듯 세대결 집회를 한다고 하니 지하의 안 의사가 탄식할 노릇이다.

안중근 의사 의거일 하루 전인 오늘 하얼빈역 앞에서 분열의 대한민국을 생각하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안중근 정신을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갈 길을 그 분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다. 26일 하루만이라도 ‘안중근 정신’을 생각하고 화합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중국 하얼빈에서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필자 : 한겨레신문 기자와 청와대 정치국장을 거쳐 영남매일신문 회장과 2018평창동계올림픽 민간단체협의회장 등을 역임했다. 한양대와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중국 칭화대에서 동북아시아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강의했다. 2017년 10월 베이징대에서 ‘한중관계의 미래’를 주제로 초청특강을 하는 등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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