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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희의 현장에서] 각종 악재에 ‘경찰의 날’ 웃지 못한 경찰

“언론 보도 때문에 수사에 방해가 된다.”

지난달 19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화성연쇄살인사건 브리핑에서 경찰이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기자들이 화성연쇄살인범 DNA 감정은 언제 진행됐는지, 이춘재가 혐의를 인정했는지 등 질문을 하자 경찰은 모두 답을 피했다. 수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국과수에 DNA감정을 언제 보냈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수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경찰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지만 드러난 건 경찰의 과잉·부실수사였다.

21일 경찰의 날, 경찰은 웃지 못했다. 당장 이춘재 사건에 대해 자랑했다가 망신만 당했다는 경찰 후배들의 목소리가 컸다. 이춘재 본인이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도 저질렀다고 자백하면서 당시 고문으로 생사람을 잡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8차 사건으로 20년 감옥살이를 한 윤 모 씨는 재심을 준비중이다. 과거 경찰만이 문제였을까. 이른바 ‘버닝썬 사태’의 윤 총경은 수사 무마 대가로 비상장주식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경찰청은 압수수색 당했다. 경찰은 가능하면 많은 수사권을 검찰로부터 받아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경찰은 찾지도 못했던 수사 근거를 검찰은 잘도 찾아냈다. 그래서 윤총경 사건은 ‘경찰은 못믿는다’는 세간의 인식을 재확인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21일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경찰이 20년 전처럼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진 않더라도 경찰의 비리는 시민들에게 고문이다. 버닝썬 논란으로 강남서가 시끄럽자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내놓은 ‘금주령’을 보며 국민들은 실망했다. 술이문제겠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경찰의 부정부패를 줄이겠다며 내놓은 반부패 시민 토론회도 마찬가지였다. 토론회에서는 경찰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 낡은 파출소를 개선해야 한다는 식의 경찰 옹호론만 넘쳐났다. 반부패토론회가 왜 생기게 됐는지는 잊은 채 경찰 칭찬릴레이가 펼쳐지는 것을 보면서 경찰이 달라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경찰발 잡음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최근 경찰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미국 대사관저 담을 넘을 때 사실상 방치해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을뿐더러 여경이 올 때까지 여성 회원들을 놔두기까지 했다. 신체 접촉에 따른 시비를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납득이 어렵다. 경찰의 제재를 누군가가 성희롱이라고 주장한다면 그때 문제제기하면 될 일이었다. 시위대가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두려워 담을 넘게 놔두는 것은 경찰의 직무수행보다 논란을 피하고 싶었던 안이한 태도란 비판을 넘기 어렵다. 최근엔 경찰이 술에 취한 채 알지 못하는 여성의 집에 침입한 사건도 있었다. 시민 안전을 지켜야할 경찰이 사고를 치니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 이상 사건사고 뉴스에서 경찰이 주인공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시민들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경찰들을 응원하고 의지한다.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112다. 경찰의 기강 해이는 시민들의 안전과 직결된다. 이는 언론이 경찰의 각종 부정부패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하는 이유기도 하다. 정말 언론이 경찰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것일까. 화성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8차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씨는 출소 이후에도 ‘내가 화성 사건의 범인’이라는 마음의 감옥에 영구히 갇혀 있었을 지도 모른다. 경찰의 적은 언론이 아니다.

경찰의 개혁방법에 대해 취재했을 때 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옮겨 본다. “한두명 꼬리자르기식의 개혁은 반쪽짜리다. 이는 썩은 사과 몇 개가 문제라는 편협한 문제인식이다. 근본적으로는 이 사과들을 담고 있는 상자를 바꿔야 한다. 제일 먼저 경찰 내부의 제 식구 감싸기 문화를 바꿔야 한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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