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인프라 확대 목소리
유럽의 경제 최강국이자 산업강국인 독일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요 은행들은 독일이 기술적 경기침체에 돌입하고 있으며 유로존과 미국 등 주요 교역상대국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이제 시장의 이목은 독일 정부가 불황을 방어하기 위해 ‘균형 예산’에 대한 고집을 내려놓고, 전향적으로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을 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독일 1위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독일이 “‘기술적 경기침체(technical recession)’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GDP가 2분기 연속 역성장할 경우 해당 국가가 기술적 경기침체에 진입한 것으로 정의한다. 도이체방크는 지난 2분기 -0.1%의 성장률을 기록한 독일의 GDP가 3분기에도 -0.25% 기록,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날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역시 독일 경제가 3분기에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분데스방크는 월간보고서를 통해 산업생산과 주문량이 감소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경제 실적이 다시 한 번 소폭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황의 원인은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한 경제 불확실성의 증가다. 세계 경제를 드리운 무역긴장이 주요 수출국이면서 수입국인 독일의 경제를 무너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ING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카스텐 브리즈크는 “무역 갈등과 불확실성이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 중 하나를 해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럽의 경제심장’인 독일의 경제 위기는 유로존을 더 깊은 불황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역시 영향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브리즈크는 “이는 무역 전쟁의 승자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불황의 신호가 뚜렷해지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가 슈바르츠 눌(schwarze Null), 즉 ‘제로 적자 정책’을 포기해야하고, 감세·인프라 지출 확대 등 대대적인 부양책을 내놔야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독일 정부 역시 재정 부양책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했다. 메르켈 총리는 필요할 경우 정부가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고, 올라프 숄츠 재무장관도 지난 18일 경제가 어려움에 직면할 경우 550억 달러(한화 약 66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실제로 부양 카드를 활용할 지는 미지수다. 메르켈 총리가 쉽게 균형 재정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블룸버그통신은 “메르켈 총리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지는 불분명하지만, 강력한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오히려 대규모 재정 지원이 아니라 근본적인 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재정 지원이 오히려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으면서, “독일이 필요로 하는 진짜 자극은 (기업 투자 등에 대한) 규제완화”라고 지적했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