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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기업가-⑬ 범블 CEO 휘트니 울프 허드] 5500만명 이용 데이팅 앱…여성을 위한 ‘편안한 공간’을 창조하다
‘틴더’ 공동설립…성추행 스캔들로 이별
기존 남성중심 데이팅앱 모델에 환멸
여성만이 대화시작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
2014년 페미니스트 데이팅앱 ‘범블’ 첫발
포브스 선정 여성기업가 72위에 랭크
2017년 “회사 가치 10억달러 이상” 평가
여성 창업자 지원 위한 ‘범블 펀드’도 론칭
휘트니 울프 허드 CEO(위)와 미국 오스틴에 위치한 범블 본사 내부. 사무실 내부에 '먼저 움직여라'라는 회사의 슬로건이 크게 걸려있다(왼쪽). 범블 CEO이 만든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범블 매그'

전세계 5500만 명의 사용자를 보유한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이하 앱)인 범블(Bumble)에서 주인공은 ‘여성’이다. 범블의 설립자이자 CEO인 휘트니 울프 허드(Whitney Wolfe Herd, 이하 울프)는 스스로 범블을 ‘페미니스트 앱’이라고 소개한다.

가상의 ‘네트워킹 공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와 동시에 모르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을 위험이 공존한다. 범블은 이성과의 만남이 목적인 데이팅 앱에서 특히 여성이 이같은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범블은 여성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기존 데이팅 앱에서 통용돼 온 남성 중심의 규칙들을 깨부쉈다. 그리고 범블은 불과 출시 5년 만에 틴더(Tinder), 바두(Badoo) 등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데이팅 앱으로 성장했고, 울프는 성공한 여성 기업가의 대열에 올랐다. 올해 그는 포브스가 선정한 성공한 여성기업가 100인 중 72위를 차지했다.

“울프는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이룰 지 아는 사람”=울프의 동료들은 그가 ‘타고난 사업’라고 입을 모은다. 울프는 2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에게 잠재돼있던 사업가적 기질을 마음껏 발휘했다. 대학에서 국제학을 전공하면서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업을 잇따라 시작했다. 그는 첫번째 기업 ‘따뜻한 마음(Tender Heart)’을 통해 공정무역 메시지를 담은 의류를 만들어 판매했다. 이어 그는 2010년 영국 BP그룹의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해(Help Us Project)’를 추진, 에코백을 팔아 직접 사고 피해 동물보호 기금을 마련했다. 방송인 니콜 리치, 배우 데니스 리차드가 울프가 만든 에코백을 들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울프의 미래는 ‘인도주의적’ 활동가이자, 사회적 기업가의 길로 맞춰져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앞엔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틴더’를 만든 것이다.

울프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력 중 하나는 ‘틴더 공동설립자’다. 틴더는 총 다운로드 수 3억 건에 달하는 글로벌 1위 ‘데이팅앱’. 2017년 8월 기준 틴더의 가치는 30억 달러(3조 4000억원)으로, 지난해 매출은 8억 달러(9048억원)에 달한다. 울프가 최근 3~4년 간 가장 ‘핫’한 기업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틴더의 탄생을 함께 하고, 이후 다시 틴더와 이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2년여에 불과하다.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그가 틴더에서 겪은 모든 일들은 범블의 CEO로서 오늘의 울프를 만든 초석이 됐다.

‘틴더’를 공동설립하다=울프가 틴더의 공동설립자가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서였다. 대학졸업 후 1년이 지난 2012년, 울프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남부를 방문했다. 그 곳에서 IT 벤처 창업을 준비하고 있던 저스틴 마틴과 션 라드를 만나 이들과 합류했다. 이들은 그 해 9월 향후 ‘데이트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게 되는 어플리케이션 틴더(Tinder)를 론칭했다.

마케팅을 도맡았던 울프는 직접 대학캠퍼스를 누비며 틴더를 홍보했다. 자신의 모교 캠퍼스에 바이럴마케팅의 일환으로 ‘캠퍼스에서 누가 널 좋아하는 지 알아봐’라는 포스터를 붙였다. 그리고 한 때 자신도 몸 담았던 여러 ‘여학생 클럽’을 찾아 그들에게 가입을 권유, 남학생 클럽 하우스에 찾아가 틴더에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들이 가입돼 있다고 홍보했다. 캠퍼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틴더는 점차 캠퍼스 밖으로 영역을 확장, 빠르게 성공가도를 달렸다. 6개월 만에 틴더는 가장 인기 있는 앱 25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2년 만에 일평균 매칭 수 1200만건에 달하는 대표적인 데이팅앱으로 자리잡았다.

틴더의 성공은 그에게 일종의 ‘스릴’이었다. 하지만 재미와 보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4년, 울프는 공동 창업자인 마틴이 자신에게 성 차별,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부었으며, 또 다른 공동 창업자 라드가 불공정하게 자신을 공동설립자 직에서 제외시켰다고 주장했다. 울프의 주장에 따르면 마틴은 “여성 CEO 사진이 있는 시각물은 회사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한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울프가 합의금을 받고 마틴이 회사를 떠나는 선에서 스캔들은 마무리됐지만, 결국 울프도 틴더를 떠나게된다.

틴더와 소송…새로운 ‘데이팅 앱’을 구상하다=이른바 ‘성추행 스캔들’을 겪으면서 울프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깊은 불신과 두려움에 빠지게된다. 그는 “두려움이 나를 뼛 속까지 집어삼켰다”고 했다. 온라인 상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는 과거 자신이 ‘공동체 형성의 수단’이라고 여겼던 온라인 상의 네트워크가 ‘무기화’되는 것을 몸소 겪었다.

다시는 데이트 시장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곧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데이팅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바두(Badoo)의 CEO인 안드레이 안드레예프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드레예프는 울프를 설득했고, 그는 기존 데이팅앱에서 흔히 통용되고 있던 ‘룰’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여성이 주도하는 데이팅앱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울프는 위치 등을 기반으로 남녀에게 서로의 프로필이 제공되고, 마음에 드는 이성 간에 ‘커넥션’이 만들어졌을 때 여성만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 24시간 내 여성이 대화를 시작하지 않으면 커넥션은 사라진다. 음란사진을 게재하거나 언어폭력을 금지하는 등 SNS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행위들도 일절 금지했다. 2014년 12월, 울프 스스로가 ‘페미니스트 데이팅앱’이라 일컬은 ‘범블(Bumble)’의 시작이었다.

울프는 “여성들이 첫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우리는 상대에 대한 학대, 공격 행위를 전혀 용납하지 않고, 여성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

여성들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데이팅앱을 만들고자 한 시도는 단지 일종의 ‘여성 해방’과 같은 움직임만은 아니었다. 틴더를 몸소 경험해 본 그는 데이팅앱의 핵심은 ‘여성’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앱 상에 여성이 없으면 남성이 존재하지 않고, 결국 비즈니스도 실패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매체는 “울프가 여성이 편안한 장소를 만든 것은 ‘고상한 정치’만이 아니었다”면서 “그것은 좋은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먼저 움직여라(Make the first move)”=범블를 론칭하면서 그에게는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기존 남성 중심의 데이팅앱에 익숙한 여성들이 ‘먼저’ 남성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틴더의 슬로건이 ‘먼저 움직여라’인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제로 데이팅앱의 룰을 바꾸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움직여야 했다.

그는 ‘능동적인 여성=범블’의 이미지를 심기 위에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친절하다는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살면서도 스타일이 좋고, 당당한 태도를 가진 여대생들을 선발해 홍보 대사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앱이 출시되기 일주일 전 촬영한 홍보비디오에는 스카이다이빙 장면을 집어넣었다. 메시지는 간단하다.

“만약 우리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면, 다른 남자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울프의 전략은 적중했다. 범블은 출시 후 첫 달만에 10 만 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5500만명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는 2017년 기준 범블의 회사 가치를 1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했다. 같은 해 울프는 틴더를 보유한 매치그룹으로부터 받은 4억5000만 달러(5071억 원)의 인수 제안을 거부해 실리콘 밸리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9살이었던 지난해, 울프는 포춘지가 선정한 40세 미만 40인의 젊은 혁신가 9위에 올랐다.

페미니즘은 서로 함께 들어올리는 것=울프는 조금씩 영역을 확장했다. 그 중심에는 일관되게 ‘여성’이 있다. 2016년 그는 여성들이 동성친구를 찾을 수 있는 ‘범블 BFF’를 세상에 내놨다. 2017년에는 여성 중심의 구직앱인 ‘범블 비즈’를 출시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여성 창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범블 펀드’를 론칭했다. 스포츠 스타인 세리나 윌리엄스가 공동 투자했다.

범블 펀드를 론칭하며 울프는 스타트업계에 여전히 존재하는 성차별을 지적했다. 그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스타트업이 빨리 성장하고 많은 수익을 낸다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이끄는 스타트업들이 받는 자금은 전체의 2%에 불과하다”면서 “벤처캐피탈을 통해 우리는 이 세계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여성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울프의 인터뷰에서 ‘범블’이란 회사명 다음으로 많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란 단어다. 그는 범블이 페미니즘 데이팅앱을 지향하지만, 그것이 ‘남성을 배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평등과 존경심의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포춘지는 울프가 설명한 페미니즘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이는 울프가 지향하는 비즈니스의 핵심 가치이면서 목표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은 서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를 들어올리는 것이다”.

손미정 기자/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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