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 3일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에서 정책금융기관·은행 관계자들과 일본 수출 규제 대응 간담회를 하려고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금융위원회 제공] |
누가 될 거 같냐고 슬쩍 물었다. 질문받는 입장에선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숱하게 들었던 물음인 게 뻔했다. 그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답은 모호했다. 다만 ‘염화미소(拈華微笑)’로 넘길 정도의 힌트는 됐다. “하마평에 등장하는 분들 가운데 그 분이 가장 첫 번째로 언급되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최종구 현 금융위원장의 후임으로 유력한 후보들 중에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이 무난하게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정부 고위직에 있는 인사의 설명이니 ‘그 첫 손에 꼽히는 후보’의 금융위원장 기용설은 팩트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신경전을 벌이는 관계일수록 상대방 동향에 더 관심을 쏟는 게 인지상정인 법. 교차확인을 위해 금융감독원 쪽 전망도 들어봤다. ‘거의 확정적’, ‘이변은 없을 것’으로 요약 가능한 답이 추려졌다. 오히려 금융권은 후임 금융위원장이 누굴지는 구문이란 반응이었다. ‘그 첫 손 후보’가 입각했을 때 그의 빈자리를 누가 채우며, 그로 인한 금융당국 고위직·금융기관 최고경영자의 연쇄이동 로드맵이 어떻게 될지가 초점이었다.
염화미소를 접한 건 일주일 전이다. 금감원 전망을 청취한 건 보름 전이다. 20여일 전엔 ‘첫 손 후보’의 검증 통과 불확실설이 퍼진 적도 있었지만, 떨쳐내고 대세가 된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스타일은 심심하다. 누구나 누가 될지 예상한다. 결과가 딴 판으로 나온 적도 많지 않다. 그래도 현 정부의 두번째 금융위원장 선정, 더 정확히는 최종구 위원장의 교체가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본과 경제전쟁 중인데, 장수(將帥)를 바꾸는 게 맞냐는 근원적 질문이다.
애초 10곳은 될 거라던 개각 대상 부처는 6곳으로 줄어든 분위기다. 이들은 편의상 ‘정권 친정체제 구축용·내년 총선 출마 희망자 퇴임에 따른 공백 메우기용’으로 나눌 수 있다. 최종구 위원장이 교체 대상에 오른 건 총선 출마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문제는 금융위가 한일 경제전쟁의 앞 줄에 서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자신의 거취를 선제적으로 언론에 알렸다. 인사권자에게 사의를 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례적이었다. 애초 ‘그만두겠다’는 메시지를 중점적으로 전하려고 기자들을 모은 건 아니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그들이 한국 금융시장에 보복조치를 할 가능성은 낮고, 영향도 제한적일 거라는 얘기를 하다 의도적으로 ‘천기누설’을 한 셈이었다. ‘선거에 나가는구나’라고 보는 건 합리적인 추론인데, 정작 그는 출마해도 자의는 아니란 점을 알리는 정치력을 보였다.
불안불안하던 시장은 직격탄에 휘청이고 있다. 증시는 급락하고 환율은 요동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한일 경제전쟁이란 변수가 하루이틀 안에 해결될 성질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의 불확실성은 장기화할 거란 전망이다.
나라 안팎 경제주체의 심리를 다잡을 ‘선수’가 필요한 때다. 불안이 붕괴로 이어질 소지를 미리 막아야 한다. 최종구 위원장은 ‘천기누설’ 때 이런 말을 했다. “2008년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을 맡아 최전선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한 경험이 있다. 당시 일부 외신이 한국경제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시장변동성이 확대된 게 여러 번이었다. 종합적·객관적 팩트가 아니라 일부 기관의 단편적 통계와 추측에 근거한 것으로, 당국·금융권 모두 엄청난 비용을 치렀다”
요컨대 그는 전쟁을 치러 본 선수다. 당국은 연일 ‘한국 금융시장 문제 없다’는 메시지를 발신하지만, 돈이 한국을 빠져나가는 건 순식간이다. 수비를 하면서 지치지 않고 버티려면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정무감각을 갖춘 수장이 긴요하다. 비상시국인데 금융위가 후임자를 맞으려고 인사청문회에 매달리는 건 블랙코미디일 수 있다. ‘최종구 유일 해법론’을 떠벌리는 게 아니라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경위가 어찌됐든 경제가 망가지면 다음은 없기에 인사권자의 전시(戰時) 용인술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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