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프리즘] 스스로 친 규제 그물 은근슬쩍 거두는 정부

‘분양가 상한제 유보·주52시간 근무제 1년 유보·최저임금 인상 속도조절·특별연장근로 허용·일감몰아주기 규제 적용 제외…’. 정부 여당이 최근 일본 경제보복의 대책으로 내놨거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안들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업, 그리고 경제를 옥죄던 각종 규제가 일본 아베와의 전쟁 속에 은근슬쩍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위에 언급된 규제정책 폐지 요구에 항상 “우리 경제는 문제없다”며 기득권 세력의 저항 정도로만 치부해왔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힘들다는 상인들과 중소기업 대표들의 하소연은 “그 정도도 못 줄거면 문 닫아라”라는 면박과 조롱 섞인 말로 응수했고, 52시간 근무제의 일괄 시행으로 인한 인력 운용의 어려움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통령의 선거 구호로 묻어버렸다.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는 정부와 시민단체가 짜놓은 정답 아닌 정답지에 맞춰야만 했고,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작용 우려는 ‘투기꾼들의 저항’ 정도로 치부돼 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5일 10년여만의 증시 대폭락, 그리고 환율 급상승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어떻기에 불안하다고 하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는 시장을 규제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현 정부의 현재 시각을 매우 잘 보여주는 예다. 월요일 아침부터 급락하는 주식에 시퍼렇게 가슴이 멍든 개미들 마음을 달래주기는 커녕, ‘그러게 누가 주식투기 하랬냐’며 비웃는 듯한 말로 들리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오후에 더해진 “남북 경제협력하면 단숨에 일본 따라잡는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실소를 넘어 황당함까지 더해주는 모습이었다.

어찌됐든 경제와 기업의 뒷다리를 잡아왔던 규제가 하나 둘 씩 사라지는 것은 다행이다.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결국 시장, 그리고 시장에서 뛰는 기업과 국민들이라는 것을 정부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에, 달라진 정부의 정책은 박수 받을만 하다. 그러나 무작정 박수칠 수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제대로된 반성은 생략된, 눈 앞의 위기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잠시 유보시키는 것에 불과한 기류도 감지되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을 위기로 판단하고, 그 대응책으로 스스로 쳐 놓았던 규제의 그물을 걷어 올린다고 칭찬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반성’이 빠졌기 때문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스스로 만든 일본과의 경제전쟁의 도구로 ‘규제 완화’를 선택한 그들에게 ‘반성’이 빠진다면, 규제는 상황이 변하면 언제든지 되살아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다. 불안과 공포가 보이는 상황에서 기업은 투자를 회피하고, 개인은 소비를 억제하는 것은 경제학 개론의 기초다.

‘일본과의 갈등은 집권 여당의 차기 총선에 유리하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유출되며 정부가 주도하는 한일 경제전쟁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이 늘어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여당은 본심은 그게 아니라며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오해를 풀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쟁의 수단으로 선보인 ‘규제완화’에 그동안의 정책들에 대한 ‘반성’을 더한다면 조금이나마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choijh@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