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테헤란로에 걸려 있는 세계 국기들. [강남구 제공] |
[헤럴드경제=한지숙 기자] “테헤란로에서 일장기를 내려주세요.”
서울 경제의 심장부 강남 테헤란로. 왕복 6차선 도로 양편에는 태극기와 함께 세계 각국의 국기들이 걸려있다. 최근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 규제 조치 이슈로 인해 일본산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반일감정이 고조되면서 테헤란로변 만국기 중 일장기를 내려달라는 주민 민원이 지역 자치구인 강남구청에 답지하기 시작했다.
18일 강남구에 따르면 제헌절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 한 주민이 ‘새올 전자민원창구’에 테헤란로변 일장기를 뺄 것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 이 주민은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온 국민이 한 뜻 한 마음으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고, 정부 역시 비상대책을 수립하여 대응하고 있는 시점에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 문화의 중심지인 테헤란로에 일장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보니 강남구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편치 못하다. 국민정서에 맞게 일장기를 내려주기기 바란다”고 적었다.
강남구 관계자는 “홈페이지 게시판의 글 뿐 아니라 유선 전화로도 구청에 일장기를 내리라는 주민 민원을 두어통 받았다”고 했다.
현재 강남구에 만국기는 테헤란로 삼성역사거리~강남역 3.6㎞ 구간에 274기, 영동대로 영동대교 남단~학여울역 3.4㎞ 구간에 158기 등 모두 432기가 내걸려있다. 깃발은 가로 90㎝, 세로 180㎝ 크기로 바람이 불어도 펄럭임이 적게 세로로 눕힌 형태다. 테헤란로는 도로변 양편에 1기씩, 영동대로는 중앙분리대에 2기씩 한 게양대에 게양돼 있다.
테헤란로에 일본 국기 등 세계 국기가 걸린 건 올해 1월부터다. 애초 이 지역은 태극기 상시게양 구역으로서 지난해까지 약 5년간 태극기가 늘상 걸려있던 곳이다. 민선7기 들어 강남구는 동 주민센터 순회 업무보고 때 강남의 글로벌 도시 이미지에 걸맞게 태극기 보단 만국기가 걸렸으면 좋겠다는 주민들 의견을 수용해 현재 처럼 만국기로 교체했다.
태극기에서 만국기로 교체한 지 7개월 만에 반일의 표현으로서 일장기를 내려야 할 지 강남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구나 한달 뒤엔 광복절이다. 한편으로 강남구는 일본 시가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고, 일장기를 보면 불편하다는 구민들이 있어서 구정 담당자로서 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한일관계는 국가 대 국가로 대응할 문제고 ‘글로벌도시’를 표방한 상황에서 일장기만 빼는 것도 어색해서 일단 추이를 좀더 지켜보고, 내부 시책회의를 거쳐 내릴 지 계속 걸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민선 6기 때 구청장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던 강남구는 지나친 태극기 사랑으로 여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당시 구는 나라사랑의 표현으로서 온오프라인에서 각종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가하면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률이 90%를 넘는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 사태와 태극기집회 등 시류를 타고 공무원들을 동원해 태극기 게양을 억지로 유도하는 등 애국심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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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영동대로 중앙분리대에 걸려있는 세계 국기들. [강남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