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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재원 비자 발급도 까탈스러워졌다”…日진출 韓기업들, 상반기 내내 ‘고통’
-“비자발급 평균 2개월…4개월 넘게 걸려 당황”
-통관도 작년보다 지연…‘준법절차’로 텃세
-판매 시 ‘한국산’ 빼는 등 ‘속앓이 대응’도
-현지기업, 연초부터 한일관계 악화 사업 영향 우려
-정부, 대일 전략ㆍ전술 노출 우려 “최대한 물밑대응”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소재 등의 수출을 규제하는 사실상의 경제보복 조치를 내리자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식자재마트에 당분간 일본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지난 2월 한국기업 A사 일본 사무소에 발령받은 직원 B씨는 일본 출입국 사무소 텃세에 깜짝 놀랐다. 평균 2개월이면 충분했던 비자 발급이 4개월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B씨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기존에 없던 새 증빙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간 A사 일본 주재원은 비자 발급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기에 B씨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와세다 대학 교환학생 경험이 있어 일본어·일본문화에 익숙하다는 B씨는 “우리 회사가 나름대로 한국 대표기업이고, 사업도 꽤 크게 하고 있는데 이런 텃세를 당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일본 진출 한국기업들이 올해 상반기 내내 비자 발급·통관 애로·코리아 디스카운트 등 각종 사업 절차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것으로 본지 취재결과 확인됐다. 본지는 일본에 있는 우리 기업 현지 법인 또는 지사 10곳과 이달 초부터 연락하며 현지 활동 중 겪은 피해사례를 업종 불문하고 수집해왔다. 접촉한 회사 관계자들은 회사나 제품 실명이 드러나는 것을 민감해 했다. ‘혹시라도 일본 파트너나 당국이 알면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몇몇 기업이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볼 순 없는 무거운 분위기였다.

사업상 어려움을 주장한 이들이 지적한 공통점은 ‘작년보다 올해 겪은 텃세가 더 심하다’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물류업을 영위하는 C사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통관에 필요한 서류를 추가 요구하거나 절차가 지연된 사례가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C사 관계자는 “항상 해온 업무였는데, 최근들어 통관이 1∼2주 넘게 지연된 건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애로점을 호소하려 해도 절차상 문제는 없어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고 했다. 일정부분 ‘네트워크’가 쌓여 부드러운 일처리가 가능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갑자기 일종의 ‘준법절차’를 요구했다는 뜻이다. 통관 지연은 비용 상승과 직결되는 문제다. 경쟁력이 깎이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판매 제품에서 ‘한국산’ 표시를 뺀 경우도 있었다. 소비자들의 차가운 반응 때문이다. 한국 제품을 일본에서 팔고 있는 D사는 최근 자사 제품에서 한국산임을 강조하던 문구를 없앴다. 제품 홍보 때도 한국산임을 알리지 않고 있다. D사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인 것을 알고 물건을 다시 내려놓더라”며 “진정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뭔지 알게됐다”고 했다.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현지 국내기업들 목소리가 올 초부터 이어졌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됐다.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가 지난 1월 28일부터 열흘 간 주일한국기업연합회 회원 23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일 비즈니스의 부정적 영향요인’으로 한일관계 악화를 꼽은 기업이 38.6%로 가장 많았다. 무역협회는 “업체 대다수(약 60%)가 2019년 한일관계가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며 “60.3%의 업체는 과거 한일관계가 나빠져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이 본격화하기 6개월 전부터 우리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정부도 이같은 일본의 우리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 움직임을 확인하고 물밑대응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당국자는 8일 “큰 틀에서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의 일본지부 등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사안은 상대국이 엄연히 존재하는 만큼 피해 기업과의 면담내용 등은 보안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일본과의 ‘맞대결’ 과정에서 최대한 한국의 전략과 전술이 노출되는 것을 자제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도 지난 4일 방송 인터뷰에서 “‘상승작용’을 원하는 아베 총리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 바 있다. 상대방에게 패를 다 보여줘 협상력을 떨어뜨리는 것을 경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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