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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이공계 병역 특례, 누구를 위한 ‘특혜’인가

우린 늘 평등하게 대우받길 바라지만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그것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기득권이나 재산, 사회적 능력에 따라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회 자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군 복무에서도 서로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해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손흥민은 되고 방탄소년단(BTS)은 안 되냐’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바로 전문연구요원 제도다. 전문연 제도는 이공계 석사학위 이상 취득자를 대상으로 선발하는 병역특례 제도다. 요원으로 선발되면 군 복무 대신 병무청이 선정한 기관에서 3년간 연구개발을 하게 된다. 기관에는 교육부 소관 자연계 대학원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의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교가 포함돼 있다. 전문연은 군 복무를 하되 학위를 취득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3년 전, 국방부는 군 복무 형평성과 인구 감소로 인한 현역 입영자 수의 급감을 근거로 ‘2023년 이후 전문연 제도 완전 폐지’ 계획을 내놨다. 지금도 이러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국방부 핵심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전문연을 비롯한 병역특례제 제도 개선안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라며 “감축 시기, 규모는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감축 계획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군 복무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현역병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을 조사해 보면 전문연부터 시작해서 체육ㆍ예술요원까지 “아주 기가 막힌 데이터가 나온다”는 것이다. 급기야 그는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박사과정에 있는 전문연은 제가 볼 때 어떻게 보면 사회 지도층에 계신 분들이에요. 이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정신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실제로 다음소프트가 블로그와 트위터, 뉴스 등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전문연을 포함하는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불만 여론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병역특례’에 대한 반응으로 2016년에는 긍정이 25%, 부정 75%으로 나타났지만 2017년에는 긍정은 23% 부정 77%, 2018년에는 긍정 22% 부정 78%로 분석됐다.

당연히 과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성과가 국가와 국방, 경제에 미치는 큰 영향에 감안할 때, 전문연 제도를 그저 ‘특례’로만 볼 수 있느냐는 이야기다. 밀도 높고, 연속성 있는 연구가 보장되어야 할 석ㆍ박사 과정 연구자가 갑자기 일반 사병으로 복무하게 하면 관련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부분도 많다. 지난 2017년 미국의 과학공학 계열 박사학위 취득자 가운데 한국인 비중(남성 57.1%)이 중국,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 서울대는 이공계 대학원 석사ㆍ박사ㆍ석박사 통합과정 모두 ‘정원 미달’ 사태를 빚었다. 세계에서 가장 공정하고 권위 있는 대학평가 전문 기관으로 인정받는 THE(Times Higher Education)가 올해 선정한 ‘톱10’에 진입한 국내 대학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런 현상을 국방부의 전문연 제도 축소 방침 때문만이라고 진단할 수 없다.

국방력이 국방 과학기술에 기인하는 바는 분명 크다. 그러나 전문연의 연구개발(R&D)과 국방 과학기술 개발이 동일 개념이라서 이공계 학생이 국가안보에 이바지하는 바가 더 크다고만 말하기도 어렵다. 전문연 복무 기간동안 국방 과학기술 발전에 도움이 되는 R&D를 하는 조건이 전제돼야 전문연 제도 유지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이어 4대 과학기술원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까지 최근 토론회를 열고 전문연 제도 축소 반대 의견을 잇따라 피력했다. 한림원은 이달 말에 ‘전문연 제도 유지’ 입장을 담은 성명도 공표할 계획이다.

과학과 공학을 홀대하는 정부의 현주소를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이공계 대학원 위기론’이 대두된 진짜 문제는 전문연 제도가 아니다. 전문연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국외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현재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있는 한 연구원은 이렇게 전해왔다.

“저는 교수들이 근로기준법 잘 지키고 임금 체불 안 한다는 전제하에 전문연 제도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요. 전문연은 교수의 사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국방 과학기술 관련 연구를 해야 하고요. 그게 아니라면 전문연은 온갖 ‘시다바리’(잔심부름)를 다 하거든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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