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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연출 데뷔한 박찬욱 감독, 영화와 드라마 플랫폼 사이에서의 고민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영화와 드라마가 근본적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6부작 하나하나가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라 긴 이야기, 긴 영화라고 생각하고 작업했다.”

박찬욱 감독이 ‘리틀 드러머 걸’로 드라마 연출자로 데뷔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결된 건 아니라도 드라마는 다음 회를 보고 싶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2편은 1편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여주는 것, 이런 건 좋은 경험이었다. 아마 미니시리즈도 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와 다른 점이었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이스라엘 정보국의 비밀 작전에 연루돼 스파이가 된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와 그녀를 둘러싼 비밀요원들의 숨 막히는 이야기를 그린 첩보 스릴러다.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에서 방송된데 이어 29일 VOD 스트리밍업체 왓챠플레이를 통해 감독판이 공개됐다.

박 감독은 “감독판은 방송판과 비교하면, 심의기준과 방영 시간 제한 등으로 인해 많이 다르다”고 말한 후 작품의 원작인 존 르 카레의 소설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은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리틀 드러머 걸’은 1979년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하니까 동서 냉전 긴장을 다루는 첩보전과는 다르다. 사람들이 프로 스파이 음모를 좋아하는 데 여기서는 스파이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와 재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가 읽어보라고 해서 한번 읽었더니 바로 제작자에게 연락하게 됐다.”

박 감독은 “팔레스타인은 끝없는 폭력의 악순환속에서 해결책 없이 답답한 지역이고, 이스라엘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뮌헨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단이 테러를 당하면 이스라엘에서 완전히 흥분한다. 어린 선수가 무슨 죄가 있는가? 우리도 전쟁으로 증오의 뿌리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해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소재 같이 여겨질까봐 걱정은 했다.한반도의 삶과 우리의 역사도 그들이 겪는 것과 통하는 데가 있다. 우리가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70년대 이야기라 해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 현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지구가 네트워킹되면서 서로가 다 영향을 주고받는다.”

박 감독은 “이스타일과 팔레스타인중 누가 정의이고, 악인지 쉽게 판단하기 힘들다. 모사드 비밀요원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적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안다. 팔레스타인 사람에 빙의돼 이스라엘에 고통을 안겨줬다며 울기까지 한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지만”이라면서 “존 르 카레는 취재를 많이 했다. 배우도 아랍과 이스타엘 양쪽 다 있다. 양쪽 사람들에게 불쾌한게 없는 지 체크까지 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번 드라마의 흥미 포인트를 찰리라는 주인공을 테러리스트 애인으로 꾸며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힘든 점이라고 설명했다. 진실과 허구의 대립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봐달라는 말이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인) ‘아가씨’도 상대를 속이기 위해 저택으로 들어가고,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를 멀리 하는, 임무 따로 사랑 따로가 아니라 하나로 묶인다. 이런 소재를 내가 좋아한다.”
박 감독은 런던영화제에서 이번 작품 방송판 1~2회를 극장에서 봤다. 정작 여기서 갈등이 생겼다.

“극장에서 못 트는 게 이렇게 뼈아플 것라고는 생각 못했다. TV도 화질이나 음질에서고사양이지만, 극장과는 색깔과 사운드, 스크린 사이즈가 다르다. 방송판 1~2화를 틀어주자 슬퍼졌다. 드라마를 하려면 극장 상영을 희생할만한 작품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감독은 ‘로마’나 ‘옥자’를 극장에서 쉽게 보기 힘들다는 건 아이러니라고 했다. 영화사들은 선뜻 투자를 하지 않는데, 넷플릭스 같은 곳에서 큰 투자를 해 만들어놓으면 극장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 “극장과 동시 개봉을 허용하거나, 창작자가 그때그때 신중하게 플랫폼의 중요도를 생각해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후자는 하나를 포기해야 하니 괴로운 거다.”

박 감독은 꼭 하고싶은 긴 이야기가 있다면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 감독을 번갈아 하기를 원한다. “할리우드는 말이 잘 안통하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영화란 어느 곳이건 근본적으로 비슷하다. 직업적 속성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다. 외국 작품을 하면 전에는 대사를 줄여 과묵한 무드로 접근한다면 이번 작품은 말로 재미를 준다는 게 달라지는 점이다.”

박 감독은 ‘박쥐’의 태주(김옥빈), 금자씨(이영애), 아가씨(김태리) 등 유독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을 많이 한 데 대해서는 “여성은 인구의 절반인데, 지금까지 나온 여성 캐릭터는 아직 적다. 이건 훌륭한 시장이다. 결혼 생활이 길어지고, 딸이 성장해 자기 몫을 하고 있는 데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답했다.

박 감독은 “영화를 본인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드냐”는 질문에는 “계산을 해본 적은 없고, 내가 생각한 재밌는 방향대로만 했다”고 답한 후 “나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건 형식적으로 특이한 게 많은 ‘올드보이’”라고 했다. 초창기 영화 감독 일이 들어오지 않아 영화 평론가를 하며 살았던 박 감독은 “남의 영화를 분석하면 나중에 내 작품을 만들때 밑바탕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했는데 도움이 안됐다. 그건 그거다. 하나도 기억안났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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