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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당신의 개인정보는 누구 것입니까
김정보(가명)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통신사 대리점에 가서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매하고 겸사 요금할인 목적으로 신용카드도 새로 발급받았다. 오후에는 감기 기운이 있어 직장 근처 병원에 첫 방문해 진료를 받았다. 퇴근 후에는 평소 사고 싶었던 물건을 검색하던 도중 가장 저렴하게 판매하는 쇼핑몰이 있어 가입했다. 모처럼 책을 읽을 생각에 공공도서관 홈페이지에 오랜만에 접속했다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잊어 본인확인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계정을 발급받았다. 김 씨는 이날 하루에만 개인정보를 5번 제공했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다는 약관을 눈으로만 훑고 동의란에 체크한 뒤 본인 볼일에 집중했다.

가정의 상황을 묘사했지만, 이는 누구나 평소에 겪어봤을 법한 일들이다.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해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졌다. 하지만 더욱 당연해진 현실은 우리 손을 떠난 개인정보가 어디로 이동하고 어떻게 처리돼 활용되는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에 수십통의 스팸 전화, 문자, e-메일을 받으면서 ‘그렇게 털렸는데 별 수 있겠어’하고 자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쯤 되면 ‘개인정보 불감증’ 수준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 행정안전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지난달 펴낸 ‘2018 개인정보보호실태조사’에 따르면 25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 동의서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전체의 70% 가까이 됐다. 주된 이유는 확인하는 것이 귀찮고, 동의서 내용에 관계 없이 서비스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제공했어도 이 정보의 주체인 당사자가 열람, 정정ㆍ삭제, 처리정지 등을 요구할 수 있는데 실제 이 같은 권리를 실천한 경우도 3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는 동안 개인정보침해는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년간 개인정보 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65%로 이 중 무단 수집ㆍ이용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처럼 개인정보의 무분별한 제공과 그에 따른 각종 피해가 ‘일상’이 되버린 현재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블록체인 업계를 통해서다. 최근 블록체인 기업 대표들을 만나거나 공식 발표 현장에 가면 가장 비중있게 나오는 키워드가 바로 ‘데이터’다. 이 데이터의 핵심 중 하나는 개인정보다. 블록체인 기술 특성 상 데이터를 특정 한 곳에서 집중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분산 처리하고, 중개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거래하는 P2P방식을 지원하고 있어 개인정보를 다루는 체계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명목상으로는 개인정보가 당사자 자신의 것이긴 했지만, 사실상 이를 쥐고 사용하는 쪽은 기관ㆍ기업 등 특정 주체여서 실질적으로 개인정보 권리를 개인에게 돌려주자는 ‘철학’이 부상하고 있다. 바로 ‘자기주권(셀프소버린;self sovereign)’이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한 블록체인 기업 대표는 “지금까지 제도적으로 개인정보를 개인이 제대로 관리하고 싶어도 중앙집중식 관리 체제 속에서는 사용자경험이 매우 불편했다”며 “이제는 개인이 원할 때는 쉽게 자신의 정보를 이동시키고, 되돌려 받고, 삭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블록체인 기업들은 새로운 네트워크 위에서 개인정보를 새롭게 운용하는 기반(메인넷)을 본격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새판을 짜는 셈이다. 판이 깔렸으니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개인정보에 접근하려는 서비스들도 속속 진입하고 있다. 바로 데이터를 사고 팔 수 있는 서비스다.

그간 개인은 자신의 정보를 제공만 하는 주체에 그쳤지만,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에서는 기업들이 이 정보를 수집해서 마케팅 등으로 활용할 때 각 개인에게 일정 수준의 비용을 치르게 돼 있다. 개인이 제공한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비용이 결정될 수 있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일단 수집부터 했던 기업들도 필요할 때만 개인정보에 접근하면 된다. 개인정보 주체와 사용자가 명확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 시장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한 단계여서 당장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확신하긴 힘들다. 블록체인 기업과 서비스업체들은 정교하게 시스템을 구현하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해 사용자들이 지금보다 더 확고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 새로 나온 서비스를 이용해 시장의 가능성을 만들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의 발전을 위해 시민의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월드와이드웹(WWW)의 아버지’ 팀 버너스리의 말은 곱씹어볼만하다. 그는 웹탄생 30주년을 맞아 최근 전 세계에 공개한 서한에서 “데이터(개인정보) 권한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지 않고 계속 ‘동의’만 클릭한다면 시민으로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killpa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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