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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고-이장우 경북대 교수]교보생명 ‘축적의 시간’과 어피니티 ‘돈벌이 경영’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이 외국계 재무적투자자(FI)들의 공격으로 코너에 몰렸다. 2012년 맺은 주주간협약에 근거한 풋옵션으로 보유 주식을 신회장에게 2조 122억 원에 되사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시 어피니티콘소시엄이 1조 2054억 원에 사들인 것을 감안할 때 약 90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세간에서는 신회장의 경영권을 노리는 모습이라는 평이다.

외환위기 이후 론스타 사례에서 보듯이 합법의 우산 아래 자본 논리로만 움직이는 재무적투자자 행태에 대해서는 이미 그 빛과 그림자를 경험한 바 있다. 안타까운 것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한국 인본주의 경영의 대표주자가 당사자라는 것이다. 경영학계에서는 그의 인본 경영, 언행일치, 솔선수범 등이 일본 경영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에 비유되면서 아직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한국식 경영철학의 전범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회장의 인본주의 경영철학은 과거 산부인과 교수로서 인간중심의 윤리적 사고에서 근원을 찾거나 일본의 존경받는 기업인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그의 경영철학은 3대를 잇는 독립운동 가문의 애국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자원 없는 국가의 대안’으로서 교육과 자본을 키우는 것(대한교육보험회사)이었고 지금의 교보생명으로 꽃을 피웠다. 2014년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을 수상한 이유도 이러한 경영철학을 진정성있게 실천한 결과 탁월한 경영성과를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2000년 대표이사 회장 취임 당시 2,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켜 해마다 5000억 원 수준이었던 자기자본도 현재 10조 원으로 증가했다. 무엇보다도 생명보험 본연의 가치에 집중해 고객중심으로 변화혁신을 추진함으로써 한국 생명보험 산업의 선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실천한 크고 작은 사회공헌 활동들은 산처럼 쌓여 미담이 되어 왔다. 우리의 문화적 자존심이 된 교보문고와 광화문글판을 비롯해 한국 최초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그 동안 대산문화재단이 지원한 300편이 넘는 번역 작품 중 하나다.

굳이 경영성과와 사회공헌 활동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자본으로만 이룩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958년 설립이후 한마음으로 쌓아온 ‘축적의 시간’이 귀중하기 때문이다. ‘축적의 시간’은 기술혁신에도 필요하지만 철학과 문화의 창달에도 필수적이다. 돈으로 쌓은 탑이 무너지면 바로 복구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 무너지면, ‘돈벌이 경영’으로 전락해 한순간 경쟁력을 잃게 된다.

공교롭게도 논란의 중심에 선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도 2017년 한국경영학회로부터 투자금융부문 최우수 경영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삼성그룹 재무전문가 출신의 유능한 최고경영자(CEO)가 탁월한 투자 감각과 능력을 발휘해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그 동안 LG, 현대차, 신세계 등 재벌 대기업들의 백기사로서 지원군 역할을 하며 이름을 날려 왔지만 지금은 그 날카로운 창끝이 교보생명을 향해 있다. 한국식 경영이 뿌리를 내리기를 소망하는 경영학자로서 작금의 ‘창과 방패’의 싸움을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으로 지켜볼 따름이다.

이장우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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