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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아 기자의 바람난과학]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은 원소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만일 언젠가 우리가 우주의 다른 문명과 만난다면, 확신컨대 두 문명이 공통으로 갖고 있을 지식 중 하나는 원소들을 정렬한 체계다. 두 지적 생명체는 단박에 서로의 체계를 알아볼 것이다.” (존 엠슬리, 영국 화학자 겸 과학저술가)

여기서 ‘원소들을 정렬한 체계’가 바로 주기율표다. 우주에는 언뜻 수천, 수만 가지의 원소가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단 118개다. 118개의 원소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 원소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한눈에 정리한 주기율표를 보고 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실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원소의 발견은 결국 눈에 보이는 물질적 실체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는 1869년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가 주기율표를 제정한 지 150주년이 되는 해다. 유엔은 올해를 ‘국제 주기율표의 해’로 정했고 유네스코는 지난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기념행사를 열었다.

주기율표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을 설명하는 표, 주기율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다. 고대 그리스인의 주기율표는 흙·불·공기·물였다. 이 4가지 물질을 세상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라고 여겼다. 그러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삼라만상이 원소, 즉 ‘더 쪼갤 수 없는 알갱이’(그리스어 Atomos)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그것도 기원전 5세기에.

중세 시대에는 연금술사들이 근대와 현대의 화학 초석을 닦았다. 이들은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는 실험을 했다. 화학적 비법만 알면 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금을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인과 같은 새로운 물질이 이때 발견됐다.

이후에도 새로운 원소들은 속속 발견됐다. 우주가 탄생했던 빅뱅과 함께 원소번호 1번의 수소(H)가 발견됐고, 분광기로 태양빛을 분석하던 중에 원소번호 2번의 헬륨(He)이 발견됐다. 원소번호 88번 라듐(Ra)과 84번 폴로늄(Po)을 발견한 프랑스 화학자 마리 퀴리도 빼놓을 수 없다.

19세기 중반에는 각 원소의 원자량까지 계산됐다. 화학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각 원소 사이에 규칙을 찾고자 했다.

그리고 1869년, 멘델레예프는 그때까지 발견된 56개의 원소들을 원자량 순서대로 죽 늘어세워 주기율표를 만들어 발표했다. 우리에게는 ‘수헬리베 붕탄질산…’ 암기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실체에 대한 이해의 시작이었다.

그는 주기율표를 만들면서 발견되지 않은 원소에 대해선 빈칸으로 뒀는데 그러면서도 공란에 장차 발견될 원소의 이름과 성질까지 정확히 예측했다. 예를 들면 그는 칼슘(Ca)와 티탄(Ti) 사이에 원자량 44에 가까운 원소가 발견될 것이라 내다봤다. 얼마 후 그 원소가 발견됐다. 원자량은 멘델레예프의 예측과 흡사한 44.956이었다.

현대에 이르자 과학자들은 원자보다 더 작은 양성자를 토대로 정밀한 주기율표를 만들었다. 지구에 존재하는 천연원소는 현재 93번(넵투늄·Np)까지지만, 불과 3년 전 새롭게 정식 이름을 얻은 113~118번까지는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인간에 만든 인공원소다. 특히 원소번호 113번은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국가명인 니혼(日本)을 딴 니호늄(Nh)이다.
 
현대 화학의 초석이 되는 주기율표를 발표한 1869년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

▶주기율표로 읽은 세상= 세상은 원소로 이뤄졌다. 지구 전체 무게의 65%는 산소(O)와 철(Fe)이 차지하고 있다. 우주 질량의 97%는 수소와 헬륨이 차지하고 있다.

현대인의 삶 속에는 어떻게 녹아들었을까. 단열재와 같은 건설재료, 컵라면 용기, 플라스틱, 약품, 염색재료, 의료용품, 농약, 비료, 태양전지, 연료저장장치, 등 화학에 의한 성과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우리가 먹는 화학조미료부터 시작해 스마트폰, TV, 화장품, 옷, 신발 등 화학이 결합되지 않은 것을 찾기가 더 어렵다. 우리는 주기율표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기율표 빈칸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우선권 분쟁과 국가 간의 국수주의적 다툼도 있었다. 우선권을 확보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해 과학적 발견을 위조한 과학자도 있었고 연구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 과학자의 우선권을 대신 주장하며 물고 늘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주기율표에 채워질 원소들에 대해서는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과 국제순수·응용물리학연합(IUPAP)가 각각 과학적 검증을 한 뒤 그 결과를 놓고 통과 여부를 결정하기로 규정을 바꾸게 됐다. 검증 과정이 더 까다로워지고 승인 기간이 길어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원소 발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마법과 다를 바 없다. 원소들을 정렬한 체계는 세상에 숨겨진 것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힘을 갖게 만들기까지 한다. 이런 영향력이 개인의 과학자나 하나의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73살에 폐렴으로 삶을 마친 멘델레예프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의사 선생, 당신에겐 과학이 있고, 내겐 신념이 있소.”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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