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정치의 상실, 현재의 ‘보호주의’, ‘민족주의’ 배경
서유럽 14개국 중도정치 붕괴…중도 표심 회복 기대도
다보스포럼 ‘세계화 4.0’ 주제…개방성 확대 논의
미국 정부의 셧다운 중단을 외치고 있는 시위대. [로이터]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보호주의와 민족주의 정치를 통해 경제를 폐쇄하기보다는 새로운 사회적 화합을 구축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세상에 개방돼 있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창립자)
2019년 현재, 세계 정치와 경제는 ‘분열’과 ‘대립’으로 점철돼 있다. 철저한 ‘자국 우선주의’ 기조하에 미국은 미ㆍ중 무역분쟁을 일으키며 글로벌 경제를 순식간에 불확실성의 늪으로 밀어넣었다. 국경 장벽을 건설해 이민자로부터 미국인들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은 민주당의 반발 속에 역사상 최장 기간 셧다운(업무 정지)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확대, 정치적 안정성 확대를 목표로 출범한 EU(유럽연합)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진통과 함께 이탈리아, 헝가리 등까지 탈퇴조짐을 보이고 있다.
극단적 보호무역주의와 정치이념이 전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지금, 글로벌 엘리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세계화 4.0’을 주제로 22일(현지시간)부터 나흘 간의 일정을 시작했다. 이분법적인 정책이 아닌 개방성 확대가 현재의 ‘불확실성’을 돌파할 열쇠라는 것이 ‘세계화 4.0’의 핵심이다.
다보스포럼을 창립한 슈바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정면 겨냥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회복이 고르지 못하게 진행되면서, 불안과 좌절 속에서 포퓰리즘이 현상 유지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정치권의 지형 역시 급변했다. 중도주의로 대표되는 이른바 ‘중간지대’가 사라지면서 양극에선 정당 간의 대립은 더욱 격화됐다. 중간지대를 벗어나 ‘극우’, ‘극좌’로 이동한 권력이 표심에 호소하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다. 결국 ‘중도정치’의 상실이 슈바프 회장이 거론한 오늘날의 보호주의, 민족주의 정치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이먼 힉스 ‘사회민주주의의 부침’ 보고서, 런던정경대] |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도정치의 위축과 그 영향’이라는 분석기사를 통해 “지난 2년 동안, 우익 포퓰리스트의 부상과 이제는 활력을 잃은 좌파에 의해 세계는 처음으로 흔들렸다”면서 “둘 다 더 깊숙하고 불안정한 추세의 산물이다”고 분석했다.
과거 득표를 위해 극단적 정치성향을 가진 정당들은 서로의 입장을 수용하며 꾸준히 ‘중간지대’를 향해 움직였다. 중도 좌파는 세계화와 규제완화를, 우파는 복지 국가에 대한 이념을 받아들이면서 타협점을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는 현실은 유권자의 불만으로 이어졌고, 유권자들은 더욱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후보에 표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중도정치의 붕괴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실제 런던정경대학교의 사이먼 힉스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4개의 서유럽 국가에서 중도 우파 정당의 투표 점유율은 36%에서 29%로 줄었고, 중도 좌파인 사회 민주당 역시 31%에서 23%로 점유율이 급감했다. WSJ은 “정치적 중도의 붕괴로 인해 연합 조직을 구성하거나 통치가 필요로하는 타협안을 협상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브렉시트 찬성파와 반대파가 영국 의회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로이터] |
중도정치가 붕괴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과 영국이다. 오늘날 미국의 ‘셧다운’과 영국의 ‘브렉시트 진통’은 미국 공화당과 영국 보수당의 ‘우익화’에 따른 결과물로 평가된다.
인터넷의 발달 역시 중도정치가 붕괴한 주요 배경으로 거론된다. 유권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고, 정치권과 즉각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신생’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네덜란드의 정치학자인 캐서린 드 브리스는 “걸러지지 않은 유권자의 메시지를 기반으로 신생 정당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강력한 소통을 위해 신생정당은 중도의 실패를 비난하며 정체 된 임금, 금융 위기 및 통제되지 않은 높은 이민자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면서 극단의 성향을 갖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익 포퓰리즘의 득세와 이로인한 글로벌 시장의 분열은 수 많은 부작용을 예고하고 있다. WSJ은 “세계 무역기구 (WTO)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전으로 중단될 수 있고, 북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민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에서 창설 될 수 있다”면서 “EU는 이미 영국의 임박한 출구와 맞서고 있으며, 이탈리아, 헝가리, 폴란드 정부는 EU 역할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간지대’가 언젠가는 회복될 것이란 기대도 존재한다. 더 많은 표를 얻고, 전세계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양극단의 표심은 다시 ‘중도정치’로 회복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드 브리스는 “이념적 다양성을 초래한 세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분열은 새로운 균형(Fragmentation is the new equilibrium)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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