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헤럴드포럼-류웅재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국가의 품격
국가의 품격과 관련한 최근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국격에 관한 논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설치를 통해 추진되었던 정책과 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이는 한류로 대변되는 국가의 거시 문화정책에 반영되기도 했고 소프트파워, 공공외교 등 학술담론과의 연관성 속에서 유력한 저널리즘적 수사나 일상의 언어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가 발화 주체가 되어 품격 담론을 국가주의화하는 순간, 이는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되거나 변질되곤 한다는 점이다. 또한 수신자로 하여금 이러한 메시지의 의도가 다른 정치적 목적에 복무하는 전략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일례로 MB정부의 국격담론은 이후 박근혜 정부의 알맹이도 없고 대화의 상대방을 의식하지도 않았던 ‘통일대박론’처럼 허구적인 것임이 드러났다. 이는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의 반복된 거짓말처럼 말과 사물의 기민하고 복잡한 조응 관계를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의 품격은 이례적인 방식으로 촉발되어 정치적 변화를 견인하고 범지구적 공명을 일으켰던 ‘촛불’의 성취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촛불의 기억을 지금 이곳에 투사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는 광장의 민주주의를 삶과 사회, 일상의 민주주의로 심화하는 것이며, 소비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과 노동의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인 사회문화적 기획들을 실험하는 것과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년, 노동, 미투운동 등을 둘러싼 진중한 사회적 논의와 대응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성숙도와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는 우리 사회의 불안과 희망을 보다 용기 있고 진실하게 다루는 것과 연결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논의한 목소리(포네)와 말하기(로고스)의 구분을 창조적으로 접합하고 상호작용을 모색하는 것과도 연결된다. 이는 정치적 숙의와 행동의 매개가 되는 이성적 로고스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목소리, 즉 다기한 고통과 애환, 공통 감각들을 진솔하게 소통하는 능력과 실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포함한다.

나아가 국가의 품격은 정부 주도적으로 문화상품을 세계화하고 외국 정상들과 패션쇼를 연상하게 하는 이벤트, 혹은 마케팅에 토대하는 정치보다 본질적인 무언가를 요구한다. 또한 이는 국가브랜드 가치를 향상하기 위한 이미지 정치, 촘촘한 법치주의나 가시적 경제지표에 대한 과도한 강조 등과 구별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는 기술적 차원의 세밀한 제도 만들기와 적용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당면한 절박한 문제와 현안들, 공유된 정서와 사회적 상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숙의, 정책적 개입을 요청한다.

한 예로 최근 붉어진 체육계 미투 확산과 관련한 정부와 언론, 시민사회의 효과적인 대응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외형의 성장을 따르지 못한 우리 내면의 후진성이 발현된 결과이다. 이는 그간 올림픽 금메달 수로 상징되는 가시적 지표와 타자화된 시선에 대한 우리 안에 내재화한 콤플렉스에 기인한다. 때문에 빙상연맹과 원로들의 ‘올림픽 메달 따줬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저항 담론과 강고한 카르텔의 유지가 가능했다. 이는 부끄러운 일지만 극악한 그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 사회의 말단과 일상에 착근된 집단 무의식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다루고 해결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데에 일조할 할 것이다.

혹자는 품격주의 자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품격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도 일정한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이의 실재나 기능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누구보다 ‘소통’을 소리 높여 이야기했지만 이견과 타자를 ‘소탕’하는데 더 관심이 많았고, 국가의 ‘품격’을 강조했지만 통치를 위한 형해화한 ‘국격’ 담론에 머물고 만 지난 정부들의 과오에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국가는 품격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더 나은 사회와 국가를 위한 실천적 노력을 구성원들이 함께 추구하는 과정에서 국가 또한 그 열매를 향유하고 이와 선순환 할 수 있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