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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재섭 선임기자의 금융 톺아보기] 실손의료보험 어찌하오리까
실손 의료보험료가 또 오른다. 2009년 10월부터 2017년 3월까지 판매된 ‘표준화 이후 실손보험’과 2009년 9월 이전 판매된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의 보험료가 올해 대부분 6~10%가량 인상된다. 보험료가 낮아지는 상품은 2017년 4월부터 판매된 신(新) 실손보험(일명 ‘착한 실손보험’) 하나 뿐이다. 손해보험사들은 이달부터 신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6~8.6% 인하했다. 하지만 표준화 이후 실손보험은 이달부터 6~9% 인상했고,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도 오는 4월 최고 10%까지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실손보험료 인상 주범은 손해율=보험료를 올리는 주된 이유는 손해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의 발생손해액을 위험보험료(위험보험금 지급의 재원이 되는 납입보험료)로 나누어 위험손해율을 산출한다. 위험손해율이 100%가 넘는다는 건 가입자로부터 받은 보험료보다 가입자에게 지급한 보험금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 경우 보험사들은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험손해율이 위험수위로 치솟거나 하면 보험사들은 적자를 모면하기 위해 요율을 인상하게 된다. 이번에 실손보험료가 오른 주된 이유도 손해율이었다.

위험손해율은 이미 수년 전부터 위험수위에 있었다. 실손보험 시장점유율 81.4%(계약건수 기준)를 차지하는 손보사로만 보면 상반기 기준으로 위험손해율은 2016년 140.5%, 2017년 127.3%, 2018년 124%를 기록했다. 비록 하향추세이기는 하지만 3년 연속 120%를 웃돌만치 심각한 위험수위에 있었다는 거다.

상품종류별로 살펴보면 왜 신 실손보험료만 내리고, 나머지 실손보험료는 올렸는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신 실손보험의 보험료는 2018년 80% 그쳤다. 판매시점(2017년 4월 이후)이 가장 최근이어서 보험금 청구가 많지 않았던 데다 보험가입자에게 자기부담금(30%)을 지우는 구조여서 손해율이 양호했다.

반면 같은 해 표준화 실손보험과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각각 119.7%, 134.1%였다. 이 상품들의 탄생 이유를 살펴보면 왜 위험률이 이처럼 높은지 수긍할 수 있다. 표준화 실보는 치료비 자기부담률이 10~20%인 상품이다. 자기부담률이 없을 경우 보험가입자와 의료행위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인해 손해율이 급등, 급기야 보험사를 파산에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이 보험업계를 압박하면서 출시된 상품이다.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의 경우 자기부담금이 ‘제로’(0)였으니 당연히 손해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니, 그동안 요율 인상을 옥죄던 금융당국도 보험사의 이번 보험료 인상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다. 당국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강화정책(문재인 케어)의 영향으로 6.15%의 실손보험료 요인이 발생하지만, 표준화 이후 실손보험과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은 누적 손해율이 워낙 높아 각각 보험료가 6~12%, 8~12% 인상될 여지가 있다고 관측한 바 있다.

▶문재인 케어 속도 못 낸 탓도=욕심같지만 문재인 케어가 제 속도를 못 낸 것도 요율 인상에 기름을 부었다 할 수 있다. 정부가 애초 계획대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을 높였더라면 보험료 추가 인하 요인이 발생했을 거다. 정부는 오는 2022년까지 건강보험보장률 70% 달성을 목표로. 예비급여 추진 대상을 3800여 개로 확정했다. 미용, 성형 등을 제외한 의학적 필요성이 있는 모든 비급여의 건강보험 편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성과는 미흡하다. 선택진료비를 폐지하고 2,3인 상급병실 급여화를 추진한 것 외에 눈에 띄는 성과는 MRI, 초음파 검사비,신생아 질환, 임신 출산 질환, 무호흡증 등 수면 관련 질환, 폐암 질환, 중증 만성폐쇄성폐질환, 정신 및 행동장애 질환 치료비 등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문재인 케어는 도마 위에 올랐다.

“사업첫해 지출액 규모가 1875억원으로 계획대비 너무 낮다.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비급여항목의 급여화 정책이 난항을 거듭하는 이유”(정의당 윤소하 의원)라는 비판을 들었다. “정부가 급여화를 약속했던 비급여항목 가운데 현재까지 실제 급여전환된 항목의 숫자는 4.2%에 불과하다”(자유한국당 윤종필 의원), “급여화를 약속했던 약제 가운데 실제 급여가 이뤄진 것은 항암제 9건, 일반약제 55건뿐”(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춘숙 의원마저도 “기존에 제시했던 목표 달성이 어려울 것 같다”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실손보험은 갱신형 상품(1, 3, 5년/2013년 이후엔 모두 1년 갱신형)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해약을 한다면 모를까, 요율이 오를 때마다 이에 응해야 하는 보험가입자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신 실손보험이 나오기 전에 보험에 가입했고, 보험금 청구 없이 꼬박꼬박 보험료만 내고 있는 가입자라면 ‘보험사의 보험료 인상’이 분통하고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보험금을 못 받았다는 건, 그간 사고없이 건강했다는 얘기이니 그걸로 만족하면 그만이다. ‘사고를 당해 위험에 빠진 다른 가입자를 그간 도왔다’라고 위안을 삼을 수도 있다. ‘다른 보험사는 보험료를 안 올리거나, 조금 올렸는데 왜 당신네는 그렇게 많이 올리느냐 따져야겠다’ 싶은 사람도있을 것 같다. 따지는 것도 좋은데 한가지 미리 살펴보길 바란다. 보험료 인상 후에도 자신이 가입한 보험상품의 보험료가 같은 위험을 담보하는 다른 보험사 상품보다 보험료가 싼지 여부다. 가능한 시나리오다. 애초 실손보험을 싸게 판 보험사들이 있고, 처음부터 비싸게 판 보험사들이 있다. 일부 보험사는 위험손해율이 상대적으로 낮은편이다. 이는 위험관리를 철저히 한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험료를 좀 더 높이 받았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이런 훈수를 ‘한가한 소리’라 역정내는 보험가입자는 위험보장을 최소화 한 신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는 걸 고려해 볼 수 있다. 신 실손보험은 원래 보험료가 낮은 데다 문재인 케어 확대에 가장 민감히 반응할 예정이어서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이미 40대 중반이 넘은 가입자라면 한번 더 고민해야 한다. 실손보험은 주계약을 변경할 수 없다. 주계약을 바꾸려면 아예 보험을 해약하고, 신 실손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헌데, 이 경우 기존의 실손보험이 담보하던 위험을 보장받기 어렵다. 신 실손보험에선 이전 실손보험의 위험을 똑같이 담보하지 않는다.

다행스러운 게 있다. 단언할 순 없지만 실손보험료 인상은 올해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올해 표준화 실손보험 및 표준화 이전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8% 이상 올린 보험사가 있다면 내년에는 인상을 자제할 것이다.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치는 보험료 인상을 당국이 연속해 방치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될 뿐더러 손해율이 점진적으로 하락 추세인 까닭이다. 손해율이 100% 내외로 떨어진다면 요율 인상 동력이 멈춰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i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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