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아 기자의 바람난 과학]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교수
“로봇을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 1977년 여름 어느 날, 할리우드 맨즈 차이니즈 극장에서 영화 ‘스타워즈’ 보고 나온 일곱 살 소년은 신이 나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만 해도 소년은 몰랐다. 한 편의 영화가 심어준 그날의 꿈이 이 소년에게 인생의 지표가 되어 로봇공학자로의 길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말이다. 꿈의 로봇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 그는 데니스 홍(47·한국명 홍원서)이다.
데니스 홍 교수는 인터뷰 내내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열정은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사진=신보경 PD] |
한국에 온 데니스 홍 교수를 지난 8일 오후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만났다.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스타워즈 토크’ 강연을 앞두고 있던 그는 인터뷰에 앞서 눈을 질끈 감고 “지금도 스타워즈 이야기를 하면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로 흥분이 된다”고 했다.
ㅡ 영화 ‘스타워즈’를 처음 봤던 그날, 기분이 어땠나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에 나오는 로봇들 가운데 C-3PO와 R2-D2를 보고 저는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는 로봇에 대해 아는 게 없었고요. 로봇들이 말 그대로 그저 멋있어서 정말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ㅡ 그런데 교수님이 그동안 실제 만든 로봇과 영화 속 로봇 R2-D2와 3-CPO가 많이 닮아 있어요.
“저도 몰랐어요. 그런데 최근 책을 쓰면서 그동안 개발했던 로봇을 쭉 보는데 R2-D2와 C-3PO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영화 속 C-3PO는 인간을 닮았어요. 그런데 제가 지난 10년 동안 인간을 돕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연구했거든요. 그 이전에는 완전히 창의적인 방법으로 이동하는 로봇을 개발했어요. 바퀴와 다리가 합쳐진 로봇, 몸체를 180도 뒤집으며 세 개의 다리로 걷는 로봇, 몸 전체가 대칭으로 되어 있어 전 방향으로 이동이 가능한 로봇…. 그런데 바로 깡통처럼 생긴 로봇 R2-D2가 생각나는 거예요. 다리가 3개 달렸잖아요. 바퀴로 굴러가기도 하고.”
데니스 홍 교수는 그동안 UCLA 로멜라 연구소에서 ‘로봇은 사람과 닮아 있어야 한다’는 고정을 깨고 만들어 낸 2족 보행 로봇, 두 개의 다리로 2족 보행을 하는 동시에 나머지 두 팔로 사물을 집을 수 있거나 네 개의 다리 모두 걷는데 사용할 수 있는 로봇, 부력을 이용한 로봇, 스프링이 달린 외다리 점핑 로봇 등을 개발했다.
ㅡ 영화 ‘스타워즈’가 있어서 지금의 데니스 홍이 있었던 걸까요?
“스타워즈에서 나오는 로봇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진짜 로봇을 개발한 건 아니에요. 그러나 스타워즈가 굉장히 많은 방면으로 제 삶에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에요. 스타워즈를 지배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있어요. ‘The Force(포스)’. 영화 속 포스라는 개념은 사람에 대한 배려, 공감, 사랑으로 표현되잖아요. 저는 엔지니어예요. 엔지니어는 수학이란 언어랑 과학이란 도구를 사용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술을 만들어요. 그래서 엔지니어는 포스가 있어야 하죠. 제가 알게 모르게 스타워즈의 철학을 받아들여서 인간을 향한 따뜻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 같아요.”
스타워즈는 데니스 홍 교수와 그의 아들을 잇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는 아들과 '함께 논다'고 했다. [사진=데니스 홍 페이스북] |
ㅡ 일곱 살 소년의 꿈이 현실이 된 날이었어요.
“네, 맞습니다. 그날 제가 기자회견을 가지 않고 호텔로 돌아와서 혼자 울었어요. 슬픈 건 아니었고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뭔가가 있었어요. 저는 교수니까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도 발표하고, 로봇도 만들어요.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 하는 일이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몰랐어요. 머리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몰랐던 거죠. 그런데 그날 느낀 거예요. 제가 하는 일이 정말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말이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프로젝트는 자동차에 대한 프로젝트도 아니고 운전에 관한 프로젝트도 아니에요. 로봇에 대한 프로젝트도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앞을 보지 못한 사람들한테 정보를 정확하고 빠르게 줄 수 있는가’하는 유저 인터페이스 개념의 프로젝트였어요.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깨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요.”
ㅡ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데 피해야 할 것이라면 무엇인가요?
“실패를 할 걸 두려워하면 도전할 수가 없어요. 저는 실패를 밥 먹듯이 많이 했어요. 사람들은 저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데 사실 그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크고 작은 실패들이 있어요. 그런데 실패를 해야 성공으로 갈 수 있어요. 그래서 실패는 성공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꿈의 가장 큰 적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거든요.”
홍 교수에게 인공지능 로봇으로 주목받고 있는 홍콩 소재 로봇 제조사 핸슨로보틱스 제품인 로봇 ‘소피아’에 대해서도 물었다. 소피아는 눈을 깜빡이고 미소를 지으며 60여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했고 소피아는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인간을 파괴하고 싶다(이후 농담이라고 해명)”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소피아는 감성과 지성을 가진 하나의 생명체라는 인식이 만들어졌고 이로써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넘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산됐다.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의 모습 |
ㅡ 인간의 지성, 이성, 감성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는 인공지능 로봇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를 들면 ‘소피아’ 같은 로봇들이 있죠.
“인공지능 로봇 기술에 대한 인식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어요.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이 대화하는 모습이 미디어에서 노출됐는데, 미리 스크립트를 짜고 시스템 대로 움직이는 기계의 모습일 뿐이에요.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문장들을 이용해 통계적으로 가장 적절한 문장을 골라 출력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로봇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진짜로 대화하는 줄 알아요. 그 지점에서 큰 문제가 생겨요. 사람들이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거든요.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말보다 빨리 달린다고 우리가 무서워하는 건 아니잖아요. 인공지능 기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드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큰 기대를 하는데, 로봇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멉니다. 그래서 매일이 도전이죠.”
UCLA 로멜라 연구소가 개발 예정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르테미스 모습 |
ㅡ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패러다임의 전환을 보여주는 혁신적인 인공근육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하고, 충격에도 강하고, 탄성이 있어서 위치와 힘을 함께 조절할 수 있는 엑추에이터 모듈인데요. 해당 모듈이 탑재된 로봇인 ’아르테미스(ARTEMIS)’를 로봇 축구대회인 ‘2020년 로보컵’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르테미스에 대한 자랑은 2020년도에 할게요. 기대해주세요.”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