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지진 1년…흥해초교 가보니
고학년 학생들 임시교사서 수업
실내체육관엔 주민들 텐트도 보여
지진 피해 아파트 ‘흉물’로 전락
“1년 전 일인데도 아직 우리 아이들은 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가장 먼저 챙겨준다 했는데, 학교에 와서 컨테이너 건물을 보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자녀가 흥해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이모(41ㆍ여) 씨는 지난 9일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이날은 흥해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예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준비해온 옷을 입고 교실을 나섰다.
흥해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은 요즘 컨테이너로 지어진 임시 교사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지진 전까지 수업을 받던 교사는 이미 철거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급조된 건물이지만, 학생들은 즐겁게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 학생은 “한동안 버스를 타고 다른 학교로 가야 했는데, 다시 돌아와 기쁘다”며 “그래도 졸업하기 전에 다시 학교가 지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침부터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자신도 흥해초등학교 졸업생이라는 학부모 김모(39) 씨는 “저학년 학생들과 유치원생들은 그나마 제대로 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 다행”이라면서도 “올해로 110주년인 초등학교가 빨리 예전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15일, 경북 포항에는 유례없는 강진이 찾아왔다. 규모 5.4의 지진에 상당수 건물이 파손됐다. 1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건물은 예전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주민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보금자리를 잃은 주민들은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며 1년째 대립하고 있고, 도시 곳곳에는 그날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는 아직도 수십 명의 이재민이 텐트에 머물고 있다. 주민들은 이주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대피소에 머물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재민 중 대다수가 바로 옆 한미장관맨션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해당 맨션은 시청의 정밀점검에서 ‘소파’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지금 맨션에 거주 중이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들은 “집의 상태를 보라”며 붕괴 위험 탓에 입주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찾아가본 한미장관맨션은 곳곳에 균열이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아파트 입구는 갈라진 건물 파편이 떨어질 수 있어 초록색 안전망이 처져 있었다. 안전망과 파손 위험 탓에 주차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한 맨션 주민은 갈라진 틈새를 가리키며 “임시조치를 한 부분도 다시 페인트가 떨어져 나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청과 의견 차이가 계속되며 주민들은 비상대책위까지 만들었다. 비대위는 “정밀검사를 다시 해 이주가 가능한 ‘전파’ 판정을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정은 다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3만 3000여 명의 흥해읍 주민 중 3%에 달하는 1000여 명이 지진 공포 탓에 고향을 등져야만 했다. 정밀진단 결과 전파 또는 반파 판정을 받은 포항 내 주택은 950여 채에 달한다. 소파 판정을 받은 건수도 5만 4139건을 기록했다. 피해액으로 따지면 845억7000여만원에 달한다.
흥해읍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이경선(59ㆍ여) 씨는 “예전과 분위기가 같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동네 곳곳에 버려진 것처럼 망가진 주택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표적인 지진피해 건물로 알려진 흥해읍 대성아파트는 이제 주민들 사이에서 ‘흉물’로 여겨지고 있다. 단지 전체가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밤 사이 쓰레기를 몰래 버리는 주민들이 늘면서 단지 내부는 1년 전보다 더 더러워졌다.
이날 찾은 단지 앞에는 노란 출입금지 푯말과 함께 경찰이 만든 이동초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이동초소 안은 이미 온갖 쓰레기로 어지럽혀져 있는 상태였다. 인근 주민 송병권(71) 씨는 “경찰 초소조차 쓰레기로 가득차 있을 정도로 단지 주변이 엉망이 됐다”며 “무너진 담벼락이 아직도 도로 위에 뒹구는 걸 보면 이제는 화가 날 정도”라고 했다.
‘대파’ 판정을 받고 임시숙소를 받은 주민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2년 동안 임시숙소에서 머물 수 있지만,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대성아파트에 살다 임시 숙소를 제공받은 한 주민은 “이제 임시 거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파트는 재건축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며 “1년 뒤에는 다시 이재민 대피소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 포항 주민들에게 지진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9월 17일에는 지난해 지진이 일어났던 지역 바로 옆에서 규모 2.4의 여진이 일어나는 등 지금까지 포항 지역에서 규모 2.0 이상의 여진은 100여 차례 반복됐다.
유오상 기자/osyo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