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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두현의 클래식에 미치다] 가요를 듣는 마음으로 감탄보다는 감동 느껴라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던 시절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교 선배의 졸업연주에 갈 기회가 생겼다. 졸업 연주라는 건 일종의 발표회 같은 성격이라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이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러시아의 진풍경 중 하나는 그런 연주회에도 연주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관객들이 많이 온다는 것이다. 스타 연주자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음악을 듣고 싶어서 보통 음대생들의 연주회에도 찾아온다.

어김없이 한국인 선배의 연주에도 러시아 관객들이 보였다. 그날 연주한 곡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었다. 원래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는 것이 맞지만, 작은 연주회인 만큼 선배는 오케스트라 대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난 후 관객들이 한명씩 찾아와 선배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때 한 러시아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고 선배에게 연신 고맙다며 울먹이면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날의 연주는 실수도 있었고 선배가 만족할 만큼의 연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순수하게 음악 자체에 빠졌고 크게 감동 한 모습이었다.

클래식 연주를 들으러 가면 어떤 관객들은 음악을 감상하는 건지 아니면 평가를 하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본인이 생각하는 완벽한 연주가 아니거나 음반에서 듣던 거와 다르면 집중을 하지 못한다. 음정이 떨어진다, 박자가 빠르다, 음색이 너무 무겁다는 기술적인 접근방식에 치우치기 일쑤다. 그런 것들이 하나씩 모여 완성도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지나치다보면 감탄은 해도 감동을 느끼기 힘들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그런 감상은 일반인들에게 클래식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기도 하다. 생각해보자. 콘서트홀에서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저 연주는 작곡가의 의도를 무시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직도 클래식을 이해하려면 한참 멀었다거나 클래식은 너무 어렵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클래식에서 중요한 건 음악을 건축적으로 쌓아나가고 진행시키면서 균형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을 만들어갈 때 뛰어난 연주자라는 평을 받는다. 깊이 있는 감상을 즐기는 애호가들은 그런 연주를 찾는 맛에 클래식에 빠진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감상을 하려면 많은 음악적 지식과 감상이 필요하다.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접근법인 것이다.

입문자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려면 가요를 듣는 것처럼 편하게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도 중요하다. 베토벤이 교향곡 9번 ‘합창’을 작곡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지만, 작곡의 과정은 작곡가의 몫이고 소리들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은 연주자의 몫이다. 오직 감상자는 베토벤이 보여주고 싶었던 음악적 힘과 사랑스러운 소리와 화합의 환희를 감정적으로 느끼면 된다. 분명 베토벤은 감상자들이 음악을 들으며 감동과 희열에 빠지길 바랐을 것이다. 관객이 자신의 음악을 분석하며 모든 소리를 평가하며 듣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니다 .

한국인이라면 ‘아리랑’을 누가 부르든 음악이 주는 여운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성악가가 부르든 가수가 부르든 할아버지가 부르든 어린 소녀가 부르든, 우리는 아리랑에서 항상 마음을 흔드는 무언가를 느낀다.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관련지식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2014년에 타계한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말했다. “저는 연주회장에 와서 팔짱끼고 평가하는 100명의 관객보다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단 한 명의 관객이 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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