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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 저유소 화재] 국가중요시설이 풍등(風燈)에 뚫렸다?…스리랑카인 구속영장 반려된 이유
9일 오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경찰 관계자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된 풍등과 동일한 제품을 공개하고 있다. 전날 경찰은 고양 저유소 화재사건과 관련해 중실화 혐의로 스리랑카인 A(27)씨를 긴급체포해 조사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의 구속영장 검찰이 반려 “인과관계 소명 부족”
-잔디밭 불티 환기구 들어가 화재…안전시스템에 구멍
-“개인에게 모든 책임 돌려선 안돼” 비난 여론 확산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경찰이 고양 저유소 화재의 원인으로 스리랑카인이 날린 풍등(風燈)을 지목한 가운데 화재에 대한 의문점은 풀리지 않고 있다. 스리랑카인의 구속영장 신청이 반려되자 일각에선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과 함께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따르면 고양 저유소 화재 피의자 A(27ㆍ스리랑카) 씨에 대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이 이를 반려했다. 고양경찰서 관계자는 “A 씨의 혐의에 대해 인과관계 소명이 부족하다며 어젯밤 검찰에서 보완 수사 지휘가 내려왔다”고 10일 밝혔다. 경찰은 수사 내용을 보완한 뒤 이날 중으로 구속영장을 재신청할 방침이다.

A 씨는 지난 7일 오전 10시 34분께 고양시 덕양구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 인근 강매터널 공사장에서 풍등을 날려 화재를 유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화재의 원인이 될만한 것은 A 씨가 날린 풍등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풍등이 휘발유탱크 옆 잔디에 떨어지며 불이 붙었고, 이 불씨가 저유탱크 유증환기구를 통해 들어가며 폭발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분석했다. 당일 저유소에선 탱크 운영이나 작업을 안한데다 휘발유 저장탱크 내에 전기 스파크를 일으킬 만한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화재의 원인이 될만한 게 없다는 설명이다.

방재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됐나? = 그러나 과연 풍등 하나로 인해 이 같은 대형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먼저 따뜻한 공기를 만들어 날아가도록 제작된 풍등은 원칙적으로 불이 꺼져야 지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불이 붙은 채 추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종종 풍등으로 인한 산불이 발생해 지난 12월 국회에서 풍등 등 소형 열기구에 대한 사용 제한명령이 포함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을 볼 때 풍등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이 없다고 보긴 어렵다. 이번 화재 CCTV를 봤을 때도 A 씨가 날린 풍등이 잔디밭에 떨어져 화재가 났기 때문에 화재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문은 또 있다. 인화성물질이 가득한 저유소 시설이 어떻게 작은 불씨에 이토록 취약할 수 있느냐이다. 경찰은 잔디밭의 불씨가 탱크의 환기구 부분에 들어가 화재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경찰이 불씨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한 유증기 환기구에는 ‘인화방지망’이 설치돼 불씨가 들어오면 곧바로 꺼져야 하는 게 원칙이다. 화재 당시 저유소의 인화방지망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20분이 지나서야 근무 중이던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직원이 화재를 인지했다. 화재 방재시스템이나 직원 매뉴얼 등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찰이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화재의 모든 책임을 스리랑카인에게 돌려선 안된다는 내용의 글이 다수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스리랑카인에게 덮어씌워선 안돼…국민청원도=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스리랑카인 A 씨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경찰이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반려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A 씨를 선처해야 한다는 청원글이 30건 넘게 올라와 있다. 이번 사고는 A 씨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저유소 화재 관리 시스템 상의 문제 등이 결합된 참사라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한 청원인은 ‘고양저유소 화재의 본질은 풍등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이다’라는 글에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시설의 관리가 이렇게 부실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유증기 나오는 근처에 잔디나 풀이 어떻게 있는지, 화재 감지 센서는 왜 작동을 안 하는지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다”고 밝혔다.

설령 A 씨의 풍등의 화재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하더라고 구속 수사는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왔다. 다른 청원자는 “불을 내려는 고의도 없었는데 단지 큰 화재가 발생한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해 다른 여러 가지 원인들은 제쳐두고 연고도 힘도 없는 외국인에게 모두 뒤집어씌우고 구속까지 하는 것은 비열하다”고 꼬집었다.

A 씨는 2015년 5월 비전문 취업(E-9) 비자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공사현장을 거쳐온 A씨는 사고 당일에는 저유소 바로 뒤편의 경기도 고양시 강매터널 공사현장에 투입돼 일하고 있었다. 향후 재판에서 중실화 혐의가 인정되면 A 씨는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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