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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날 572돌③]영업점서도 안 쓰는데…어려운 한자어 넘치는 표준약관

회보, 배서 등 평소 안쓰는 한자어
영업점서도 일상 용어 쓰는데
표준약관은 유독 한자어 투성이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채무자가 발행ㆍ배서 등을 한 어음 또는 채무자가 은행에 제출한 제 증서 등이 불가항력ㆍ사변ㆍ재해ㆍ수송 도중의 사고 등 은행 자신의 책임없는 사유로 인하여 분실ㆍ손상ㆍ멸실 또는 연착한 경우 채무자는…”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 중 제 14조의 내용이다. 금융권 표준약관은 수차례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친절’하다. 일상에서 쓰지 않는 어려운 한자어가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여신거래 기본약관이나 전자금융거래 기본약관, 여신금융회사 표준 여신거래 기본약관 등에는 배서, 영수기명날인, 차주, 물상보증인 등 어려운 한자어가 수시로 쓰인다. 노력에 따라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바꿀 수 있지만 ‘관행’에 의해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물상보증인’은 타인의 채무를 위해 자기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그 담보의 가치 범위액 내에서만 채무 변제의 의무를 지는 이를 뜻한다. ‘담보 제공인’ 정도로 바꿔 쓰고, 더 명확한 뜻을 전달하려 한다면 각주를 달아 설명하는 방법이 있지만 여전히 금융권 서류에서 종종 보이는 단어다.

‘보증채무’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했을 때 보증인이 책임지는 채무를 뜻한다. ‘보증인이 책임지는 채무’로 풀어써도 문장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길어지지 않지만 관습적으로 ‘보증채무’라는 단어로 쓴다. 미리 정한 기간 동안 당사자가 누리는 이익을 뜻하는 ‘기한 이익’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회보(回報)’는 답을 알려준다는 뜻으로 얼마든지 풀어쓸 수 있다. “채무자 및 보증인의 신용상태나 담보의 상황에 관하여 지체없이 회보하며”를 “채무자 및 보증인의 신용상태나 담보의 상황에 관하여 지체없이 답변하며”로 쓰면 누구나 문장의 뜻을 가늠할 수 있지만 굳이 ‘회보’라는 단어를 써 소비자들의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배서는 다른 법률에서도 순화 대상에 자주 오르는 단골 용어지만, 역으로 법조나 세무 등 다른 분야에서도 쓰인다는 이유로 계속 사용되고 있다. ‘서명’이나 ‘이름 기재 후 도장 찍기’ 등으로 풀어쓸 수 있다.

약관에 있는 단어들 은행이나 카드 영업점에서도 잘 안쓰는 경우가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약관의 한자어들은 평소 고객들이 잘 쓰지 않는 단어다보니 영업점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차주’라는 용어도 영업점서는 ‘대출 고객’, ‘대출자’ 등으로 쓴다”고 전했다.

금융권도 언어 순화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이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금융권 용어는 공급자 중심이었고, 보험은 의학용어까지 쓰이는 분야라 특히 소비자에게는 어렵다”라며 “수용자 입장을 배려해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바꾸려는 노력이 아쉽다”고 말했다.

kate0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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