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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 이 사람] “죄가 아닌 사람 미워하면 강력 수사 못해”
김태권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를 지난달 23일 중앙지검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op.com]
-조폭ㆍ 마약 수사 베테랑 ‘강력통’ 김태권 부장검사
-영화 ‘집으로 가는 길’ 배경된 마약 사건 수사도
-“조폭과도 몸싸움? 영화일뿐 몸 쓰는 일은 없어“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2011년, 해외에서 한국 동포를 속여 마약 운반책으로 이용해온 일명 ‘한국판 마약왕’이 국내로 강제 송환됐다. 이 사건에서 보석 원석인 줄 알고 마약을 운반했던 한 여성은 프랑스에서 1년 넘게 구금됐다. 이 이야기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로 만들어졌다.

이 사건의 주임 검사였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김태권(46ㆍ사법연수원 29기) 부장검사를 최근 만났다. 그는 이 사건에서 브라질에서 체포된 ‘한국판 마약왕’ 조모(66) 씨를 구속 기소했다. 7년여가 지난 지금도 마약 운반책으로 몰렸던 피해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하다. 비슷한 폐해를 막기 위해 피해자와 언론, 영화계를 적극 연결했다. “강력 사건은 전형적으로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범죄에요. 무엇보다 피해자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죠.”

조직폭력배나 마약사건을 수사하는 ‘강력부’ 부장검사는 영화에서도 단골 캐릭터로 등장한다. 미디어는 강력부 검사를 보통 조직폭력배와 주먹다툼도 불사하는 다혈질 캐릭터로 그린다. 심지어 피의자를 폭행해 진술을 받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김 부장검사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것은 ‘인권’이었다. 형사 절차에서 인권이란 피해자 뿐만 아니라 피의자도 누릴 수 있는 권리다.

기자가 질문을 하다 범죄자를 ‘나쁜 놈’이라고 칭하자 그는 바로 “강력 검사는 어떤 사람에 대해 나쁘다는 판단을 자제해야 한다”고 바로잡았다. 강력사건 피의자를 상대하면 수사도 그만큼 거칠게 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한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강력 수사가 ‘나쁜 놈’을 가장 많이 수사하지만, 죄를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면 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수사 처음부터 끝까지 피의자의 인권이 지켜지지 않으면 수사의 명분을 얻기도 어렵고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는 김태권 부장검사를 포함해 6명의 검사가 근무하고 있다. 김보성 검사, 신준호 부부장 검사, 김 부장검사, 홍완희 검사, 서정화 검사(왼쪽부터)가 포즈를 취했다. 김성훈 검사는 재판 일정으로 함께하지 못했다.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op.com]

강력부 검사들은 다른 분야보다 과격한 범죄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대범하고 저돌적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피해자 인권과 다양한 역학 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현실에서 검사가 몸을 쓰는 일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강력 수사의 길을 택한 이유도 “꼼꼼하고 낯을 안 가리는 성격”을 꼽았다. 과거 폭력ㆍ갈취에 집중됐던 폭력조직의 범죄는 점점 진화해 현재는 무자본 인수합병(M&A), 회사 자금 횡령, 주가 조작 등 금융시장에까지 진출했다. 마약 범죄 또한 인터넷ㆍSNS를 기반으로 단속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수사 기법도 계좌추적, 디지털 포렌식, 인터넷 모니터링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위험천만했던 일화는 있다. 초임 검사였던 2004년 부산지검 강력부에 근무할 땐 조직폭력배로부터 “네 몸에는 칼이 안 들어가냐. 내가 나가면 한 번 붙자”는 험악한 말도 들었다. 기소되면 또 징역을 살아야 한다며 흥분한 피의자를 가라앉혀 겨우 조사를 마쳤다. 몇 년 뒤엔 그 피의자로부터 교도소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2012년 ‘봉천동 식구파’를 수사할 땐 인근 대학교에서 열린 동창 결혼식에 아내를 안 데려갔어요. 왜 못 가게 하냐고 물어도 걱정할까봐 말 못 했죠.” 실제로 검사가 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가족에 염려를 더하고 싶지 않아 입이 무거워진다고 한다.

김 부장검사는 “사람들이 조직폭력배가 자신을 괴롭히기 전까지는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단적으로 폭력조직이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불법 사행 산업 규모는 2017년 기준 170조 원(형사정책연구원 추산)에 달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범죄자들에게 시민들이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 강력범죄는 한 번 발생하면 재산이나 인명 피해가 크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이 논의되면서 최근 강력 수사도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 조정안은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를 나열하며 강력 사건을 제외했다. 검찰은 검경이 협력하는 별도의 ‘마약ㆍ조직폭력범죄수사청’ 신설을 주장하고 있다. 김 부장검사는 “강력 범죄 확산을 통제하는 데 실패하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도 걷잡을 수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며 “범죄로부터 국가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강력 수사가 개편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태권 부장검사는 △진주 명신고, 서울대 △사법연수원 29기 △부산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마약과 과장 △대검찰청 조직범죄과 과장 △現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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