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제공] |
-40도 넘나들었던 1994년 폭염…“건장한 청년도 쓰러져”
-장마 일찍 끝나고 북태평양 고기압 강세…올 폭염과 유사
-“당분간 고기압 영향 계속”…폭염 기록 바뀔 가능성도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대구에서 20년 넘게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황병준(57) 씨는 요즘 무더위에 지친 손님들을 보면 지난 1994년 폭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당시 대구에는 7월 초부터 폭염이 한 달 넘게 계속됐고,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당시에는 귀했던 에어컨이 설치된 황 씨의 약국은 여름 내내 주변 주민들의 쉼터가 됐다. 황 씨는 “그해 여름 직장인 월급보다도 비쌌던 에어컨을 큰 마음 먹고 구입했는데, 그 이후부터 동네 어르신들이 약국에 아예 눌러앉아 고생이 많았다”며 “건장한 청년도 열사병으로 쓰러지던 때라 약국을 찾아온 어르신들이 밖에서 쓰러질까 내쫓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해 7월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최고 39.4도를 기록했다. 연속 폭염일수는 25일로 아직까지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열대야도 7월 한 달 중 20일 동안 관찰돼 시민들은 밤에도 강변으로 나와 더위를 식혀야만 했다.
서울에서 교사 생활만 26년째라는 김일주(54) 씨도 “지난 1994년에 비하면 올해 폭염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김 씨는 “수돗물조차 뜨거워 더위를 호소하는 아이들 탓에 수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그때는 교실이나 교무실 모두 선풍기가 전부라 더위로부터 도망칠 곳이 없어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살인 더위’라고 불렸던 지난 2016년도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22.4일로 집계돼 지난 1994년 폭염(31.1일)에는 못 미친다. 그러나 24년째 깨지고 있지 않은 폭염기록이 올해는 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9일 경남 창녕의 낮 최고기온이 38.1도까지 오르는 등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 특보가 이어지고 있다. 경북 영천 37.7도, 제주와 대구가 37.4도를 기록하며 체온보다도 높은 폭염이 이어졌고, 서울도 한때 낮 기온이 35도까지 오르는 등 무더위가 계속됐다.
올해 폭염은 역대 최악의 폭염인 지난 1994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지난 1994년에는 장마전선이 7월16일에 중부지방에서 물러나며 일주일 정도 일찍 끝났는데, 올해는 지난 11일 장마전선이 물러나면서 평년보다 보름 일찍 장마가 끝나버렸다. 기상청 관계자는 “지난 1973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장마로 기록됐다”며 “장마 시작도 평년보다 많게는 3일 늦으면서 강수량도 평년보다 적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폭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반도 양옆의 두 고기압도 지난 1994년 때보다 심각하다. 지난 1994년 폭염 당시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단독으로 영향을 미치며 폭염을 이끌었다. 그러나 올해는 북태평양 고기압에 더해 중국 티벳 지역에서 강하게 발달한 더운 고기압이 함께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기상청 관계자는 “최근 유라시아 대륙이 평년에 비해 과하게 가열되면서 발달한 티벳 고기압이 한반도 부근으로 확장했다”며 “두 고기압에 강한 일사까지 겹치며 강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올해 폭염을 해결할만한 태풍이나 비 소식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올해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지난 19일 기준으로 벌써 6.1일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당분간 한반도를 둘러싼 두 고기압이 계속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보돼 폭염이 다음 달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상청은 “최근 한반도 부근 공기 흐름이 느려진데다 주변 기압배치도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며 “다음 주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무더위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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