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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한 한국사회⑤] “혼자는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오픈카톡방 찾는 현대인
500여명이 참여하는 길고양이 사진 공유 오픈카톡방. [오픈카카오톡 채팅방 캡쳐]


-같은 관심사 가진 ‘익명의 상대’와 느슨한 대화
-익명성 보장, 관심사 공유…“정서 위로받기도”


[헤럴드경제=김유진 기자] “나를 설명하지 않고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각종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이 특정 관심사의 ‘익명 오픈카톡방’에서 허전함을 채우고 있다. 불륜을 원하는 기혼자들의 대화장이나 각종 불법거래의 메카가 되는 오픈카톡방과는 달리 주제가 정해져 있고 성별ㆍ나이 등 신상에 관한 익명성이 높은 느슨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게 특징이다.

이들이 모르는 사람들과의 단체 카카오톡방에 들어가는 이유는 느슨한 관계가 주는 편안함 때문이다. ‘내향형’ 성격을 가졌다는 직장인 A(32) 씨는 자신처럼 MBTI 성격유형이 INFP인 사람들 100여명이 참여하는 오픈카톡방에서 대화한다. 

각종 인간관계에 지친 현대인들은 익명 오픈카톡방을 찾아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성격유형인 탓에 비슷한 사람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시작했다”며 “굳이 이름이나 성별을 공개할 필요 없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는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며칠만에, 혹은 몇주만에 불쑥 대화에 끼어들어도 어색하지 않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 오픈카톡방을 찾는 이들도 있다. 이해받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숨겨둔 관심사를 마음껏 얘기하기 위해서다.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준다는 직장인 캣맘 B(34) 씨는 길고양이 사진을 올리는 오픈카톡방 멤버 500여명 중 하나다.

그는 “고양이가 강아지보단 호불호가 갈리는 동물이기도 하고, 캣맘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도 있어 주변에 대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고양이 얘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어 좋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업 주부 C(36) 씨는 아이를 키우며 받는 스트레스를 말없이 한 연예인 사진만 올려주는 고독한 카톡방으로 푼다. 이름은 카톡방이지만 일절 대화는 없다.

그는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지만 공연보러 갈 시간도 없을 뿐더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챙겨볼 수 없었다”며 “팬클럽이나 팬카페 같은 10대, 20대 팬들만의 문화가 낯설어 동떨어진 느낌이었는데, 조용히 사진만 볼 수 있는 고독한 연예인방이 유행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픈채팅방을 찾는 이들의 공통 정서는 어른이 되고나서 겪는 새로운 형태의 ‘외로움‘이다. 노력해서 맞춰가며 형성해온 기존 인간관계가 점차 일에 치여 멀어지는 반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기회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른만의 고독을 느낀다는 것이다.

외로운 현대들의 현실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통계청 ‘한국의 사회동향 2015’에 따르면 한국인은 30대 이후부터 나이가 들수록 친구와 여가시간을 보내는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친구와 여가시간을 보내는 30대는 6.4%, 40대 5.9%, 50대 6.0%에 불과했다. 전 연령을 기준으로 봐도 여가시간을 혼자 보내는 비율이 2007년 44.1%에서 12%포인트 이상 증가했다.반면 친구와 여가를 보내는 비율은 같은 기간동안 34.5%에서 8.3%로 급감했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 인간관계가 축소되더라도 오픈카톡방 속 익명 대화를 실제 인간관계로 확장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거나 그렇게 해야할 이유는 찾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바쁜 삶에 맞게 적당히 미지근한 관계여서 좋다.인간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돼 있고, 이미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쏟기에도 부족하다”는게 이들의 설명이다.

kace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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