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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장 강박의 늪①] 수십t 쓰레기로 악취 들끓는데…“못 치워!” 한 마디에 ‘끝’
‘저장 강박증’에 따른 ‘쓰레기 집’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악취ㆍ미관 저해 등으로 이웃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집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쓰레기를 사실상 처리할 수 없다. [사진=헤럴드DB]
-저장 강박 따른 ‘쓰레기 집’ 사회문제 대두
-악취 등 민원 이어지나 해결책 마땅찮아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이웃집 좀 살펴봐주세요.”

지난 2월 서울 구로구는 이러한 신고를 받고 A동의 개인주택을 찾았지만, 차마 들어가지 못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쓰레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종이박스들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로 쌓여 있었으며, 주워온 고철들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산을 이룬 상태였다. 역한 냄새는 주변 골목길로 퍼질 정도로 강해 숨을 참아야만 했다. 이 주택에는 홀몸노인이 거주중이었다. 구로구는 근 한 달간의 작업 끝에 쓰레기를 모두 처리했다. 치운 양은 모두 10t에 이른다.

정신질환의 한 종류인 ‘저장 강박증’에 따른 ‘쓰레기 집’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악취ㆍ미관 저해 등으로 이웃의 불편이 커지고 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다.

저장 강박증 환자는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어떤 물건이든 못 버리고 거주지에 쌓아두는 증상을 보인다. 상한 음식 등 아예 쓸 수 없는 물건조차 놔둔다는 점이 습관, 절약으로 수집하는 형태와는 다른 양상이다. 위생 문제는 물론, 화재 등 안전사고 노출 가능성이 높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쓰레기를 치우는 데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거주지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이로 인한 악취 등 피해가 크다해도 허락 없인 치우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서울 서초구도 이런 점 때문에 난감해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말 B동의 임대아파트에 ‘쓰레기 집’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지만, 거주자인 80대 노인이 청소를 거부하고 있어 지금도 설득만 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지금도 주변에서 옷 등 물건을 얻어 마구잡이로 보관하고 있다”며 “움직일 때마다 물건이 떨어질만큼 위험한 상황이나, 언젠가 쓸 일이 있다며 손을 못 대게 하는중”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저장 강박증 환자 대부분은 문제가 무엇인지 몰라 도움의 손길을 사생활 침해로 치부하곤 한다”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1년 이상을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겨우 치운다고 해도 안심은 이르다. 재발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로 서울 종로구는 저장강박증 환자가 거주하는 C동의 개인주택을 지난 2013년부터 모두 3차례 치우면서 쓰레기 수십t을 처리했지만, 매번 원상복귀가 되는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모은 쓰레기가 언젠가 큰 돈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중”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라도 일원화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해외 몇몇 나라ㆍ도시는 ‘쓰레기 집’ 문제를 공론화해 해결을 고심하고 있다. 이미 2014년에 거주자 동의 없이 집청소를 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든 일본 교토시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문제를 그간 특수한 일로 봐온 탓에 연구나 정책이 미미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지금은 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가 모든 일을 주도하는 상황”이라며 “별다른 지원 없이 청소 설득부터 자원봉사자 모집, 후원자 탐색 등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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