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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선거운동은 ‘전국노래자랑’이 아니잖아요”

[헤럴드경제 TAPAS= 나은정 기자] 이달 말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 2차시험을 앞둔 취업준비생 이지영(28) 씨는 지나가는 트럭만 봐도 넌더리가 난다. 2주 전 6ㆍ13 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울려퍼진 스피커 소음 때문에 리듬이 완전히 깨졌다. 참다 못한 이 씨가 유세 차량을 찾아가 음악 소리를 줄여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2주만 참으면 되지 않느냐”였다. 이 씨는 “맨날 말로는 청년 청년 하면서, 진짜 청년들 앞일엔 관심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2010년 6월 제5회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유권자에게 가장 불편을 준 선거운동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조사에서 유권자가 꼽은 최악의 선거운동은 ‘유세 차량의 소음 공해’(62%). 그로부터 8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달라진 게 없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31일부터 선거운동 종료 하루 전인 11일까지 112에 접수된 유세 소음 피해신고는 7815건으로, 하루 평균 700건에 달한다.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지난 12일 기준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선거유세 소음 규제 관련 청원도 300건이 넘는다. 시민들은 “선거운동에 공약은 없고 춤과 노래만 있다”며 “일상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세 소음을 규제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유세, 왜 몇 년째 바뀌질 않아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나타나는 ‘선거유세’ 관련 키워드.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선거유세’라는 키워드를 쳐보면 자동완성 검색어로 ‘선거유세 소음’이 가장 먼저 뜬다. 더이상 예민한 소수가 겪는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뜻이다. 선거철만 되면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만 여간 나아지지가 않는다. 유세 소음을 제재할 관련 규정이 여전히 마련되고 있지 않은 탓이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스피커를 동원한 공개장소에서의 선거 운동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시간만 제한돼 있을 뿐, 음량에 대한 기준은 따로 없다. 녹음기와 녹화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 휴대용 확성장치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사용할 수 있다. 주간 집회나 시위 때는 75dB(데시벨)을 넘으면 확성기 사용중지 명령을 받지만, 유세 차량은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집시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측도 쏟아지는 유세 소음 민원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선관위는 민원을 줄이기 위해 지난 2011년 녹음기와 녹화기를 이용한 음악 유세를 제한하는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관련 법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2016년에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세 소음 규제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 한 번 없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전국노래자랑도 아니고…쇼 그만 하세요”
 
6ㆍ13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선거송에 맞춰 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선거유세 소음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선거 차량을 이용한 확성기 유세가 오전 8시부터 12시간 내내 이어지고, 대만에서는 오토바이와 택시까지 동원해 유세 퍼레이드를 벌인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서구권 국가들이 음악이나 춤 없이 공약만 가지고 ‘조용한’ 선거를 치르는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성숙한 선거운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만큼, 철지난 가요 메들리가 난무하는 구식의 유세 방식에 변화의 조짐도 엿보인다. 일부 후보는 트럭 대신 자전거나 킥보드, 전동스쿠터(세그웨이)를 선택해 유권자를 만나는가 하면, 시를 낭송하거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소음 없는 색다른 선거 유세에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한다.

“20년 전에 유행한 노래 틀어놓고 율동이라니, 무슨 ‘전국노래자랑’이에요? 그런 거 보면 투표할 마음이 싹 사라져요. 페북이고 유튜브고 자기 이름 알릴 수 있는 데 많잖아요. 이제 쇼는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직장인 신혜지(32) 씨의 말처럼 2030세대가 바라는 선거의 모습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춤과 노래 대신 할 말만 하는 선거, 딱 이정도일 뿐이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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