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억울함 풀어달라” vs “개인민원 그만” 청와대 잇단 ‘국민청원 게시판’ 논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 지적
일각 “시민 목소리 존중해줘야”


“마음은 알겠는데 청원게시판에 올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법으로 해결을 먼저 보셔야죠 이런 일로 자꾸 청원하면 정작 중요한걸 놓칠 수 있죠.”

“힘 없는 일반인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민청원하는 것을 비난하는 댓글은 좀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의 한 병원에서 종양 수술을 받아 숨진 가장의 이야기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려졌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개인 민원성 글이 잇따르면서 본래 취지와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과 시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팽팽하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 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정부 초반엔 청원 게시판이 정책 개선이나 비리 제보하는 직접적인 통로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황당무계한 청원은 물론, 개인적인 민원 요청이 주를 이루면서 개인적인 억울함을 호소하는 공간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병원에서 겪은 불친절이나 의료사고에 대한 글이 적지 않다. 대부분 “의사의 오진을 처벌해달라”, “억울한 죽음을 해결해달라”는 식의 취지의 글이 많다.

일부 누리꾼들은 청원자들의 이같은 민원성 글들이 불편하다고 지적한다. 직장인 김모(33) 씨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국민신문고를 통해 해결하면 되는데 왜 굳이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청원 게시판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올리는지 모르겠다”며 “게다가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청원 글을 올리니 내용이 모두 사실일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원자들에 대한 동정론도 만만치 않다.

억울함에 대한 호소 또한 시민들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직장인 이모(36) 씨는 “청원 게시판의 취지와는 다른 글들이 많지만 청원자들이 오죽 답답하고 억울하면 그런 글들을 청원 게시판에 올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인신 공격 등의 비정상적인 청원 글이 아니라면 시민들의 목소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원 게시판이 하소연의 장으로 전락하면서 여론식 재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청원 게시판을 통해 알려진 대구 집단 폭행 사건의 경우 경찰의 대응 방식을 두고 여론이 오락가락하면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한 50대 부부의 딸은 자신의 부모가 대구의 한 노래방 앞에서 젊은 청년들과 시비가 붙어 폭행을 당했는데 경찰의 대응이 미흡했다며 영상과 함께 억울함을 호소했다. 곧장 각종 온라인 게시판과 소셜미디어에는 수사 당국의 미흡한 대처와 청년들의 폭력을 향한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튿날 50대 부부가 청년의 뺨을 먼저 때리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딸이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 무고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글이 게시판에 잇따라 올라왔다.

이같이 청원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따라 여론전만 심화되면서 일각에선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한 청원자는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청원제도는 이제 어느샌가 전국의 시시콜콜한 사건들을 대신 전달해주고, 어이없는 요구들만 빗발치게 되는 장이 되었다”며 ”국민과의 진정한,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청원 실명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원 게시판에 실명제를 도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익명 게시판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청원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어 낙태죄 등이 이슈가 될 수 있었다”며 “개인적인 청원 또한 ‘그동안 국민들이 얼마나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면 청원을 낼까’하는 생각으로 글들을 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개인적인 청원을 다 들어줄 수 없지만 이를 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