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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포]재개발 공사 흙먼지에 기침 달고 사는 은평초 학생들 …“숨 쉴수가 없어요”
-학교 앞 4군데 재개발 공사에 천식ㆍ기관지염 호소
-학부모 비대위 집회 “아이들 건강 위해 먼지라도…”
-학생들 “수업시간 공사소리…자꾸 한눈팔게 돼요”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저 쪽에서 공사를 계속해서 먼지가 나서 교실에서 자꾸 콜록콜록 기침이 나요.”

8일 오전 등교 중이던 서울 은평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 학교 정문 건너편 공사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천막 너머로 큰 포크레인이 흙을 나르고 있었다. 근처에 가자 흙먼지가 휘날려 순식간에 눈이 뿌얘졌다. 그 주위를 책가방을 맨 학생 여러 명이 지나갔다. 몇몇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이를 지켜보던 한 학부모는 “공사가 시작되고 기관지염, 천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녹번역 삼거리에 있는 서울 은평초등학교는 3년전부터 학교 주변이 온통 재개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정문 쪽 녹번 1ㆍ2구역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후문 쪽 응암 1ㆍ2구역은 현대건설과 대림건설이 재개발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를 하면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다. 이들은 인해 기관지염, 천식, 알러지 등이 생겼고 공사 소음 때문에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은평초등학교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녹번역 재개발 공사현장 앞에서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9번째 집회를 열었다. 학부모들은 지난 2015년부터 최근까지 산발적으로 학교주변 재개발공사 안전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진전이 없어 올해 3월부터는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창구를 일원화했다.

비대위원장은 “시공사는 학생들의 안전권과 건강권을 보장하라. 어린 아이들의 소리 없는 비명을 더이상 외면하지 말라. 당신들의 자녀가 이런 환경에서 생활해도 좋으냐”고 호소했다. 한 어머니는 “우리가 돈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아이들 건강을 위해서 먼지를 처리해달라는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이 달린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울 은평초등학교 학부모비상대책위원회가 녹번역 재개발 공사현장앞에서 학습권 보장을 촉구하는 9번째 집회를 열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은평초 학생들이 올해 초 마스크를 끼고 체육대회를 하고 있는 모습 [비대위 제공]
은평초 정문 앞 모습.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은평초 후문 앞 재개발 공사 장 앞. 큰 덤프 트럭이 지나가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학부모들은 공사가 시작된 이후 아이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며칠 전 수업시간에 아이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이는 “엄마 숨을 못 쉬겠다”고 했다. 병원에선 알러지성 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학부모는 “건강하던 아이가 병원에서 한 달치 약을 받았는데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다 내 탓 인 것 같아 미안했다”고 속상해했다.

비대위에 따르면 학생들이 기관지와 피부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은평초 5학년 아이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는 축구를 해 운동장에서 하루 종일 뒹굴어도 멀쩡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 이후 아토피와 천식이 생겨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걱정했다. 다른 학부모 역시 “올해 초부터 3학년 둘째 아이가 코피가 자주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코피가 콧물처럼 흐르다가 딱지지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 건강뿐만 아니라 공사 소음 때문에 학습권도 침해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학교 주변 공사 현장이 4곳이다 보니 주변이 온통 땅을 파고 건물을 부수는 등 소음이 끊이질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기 때문이다. 은평초 6학년 조해담 양은 “공사 소리가 수업시간에도 들릴 정도다. 수업시간에 소리가 들리면 뭐가 무너지나 창문을 보게 돼 집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시공사와 재개발조합에 내용증명을 보내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시공사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구청에도 민원을 넣었지만 구에서는 “현장을 방문에 행정지도를 했다”, “살수차 등 행정 지도를 했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받았다.

학부모들은 대책이 마련될 때까지 현장을 찾을 계획이다. 비대위 측은 “계속된 시위에 엄마들은 이미 너무 지쳐있는 상태다. 그러나 아이들을 위해서는 계속 간곡히 현장을 찾아 도와달라고 호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등교길 만난 한 학생은 정문 앞에 붙여진 ‘엄마! 소음과 분진으로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플래카드를 보면서 지쳤다는 듯 “전학 가고 싶다”고 말했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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