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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사투리 쓸 자유를 허하라

[헤럴드경제 TAPAS = 김상수 기자]서울 출생은 말한다. ‘왜 굳이 바꾸냐고.’ 사투리도 매력적인데 굳이 바꾸려 한다고 어깨를 으쓱한다. 그래서, ‘단디’ 함 써줬다. 눈이 동그래지더니, “우와 너 정말 사투리 잘한다” 난리법석이다.

그 뒤로, 술자리마다 내 사투리는 술안주가 됐다. “얘 술만 마시면 사투리 엄청 잘한다”, “함 해봐해봐”, “어떻게 고친거야?”…, 그래, 사투리는 ‘고치는 것’이라 한다. 고쳐야 할 대상이 됐다. 귀찮다. 피곤하다. 역시 괜한 짓.

유별날 것 없는, 그냥 우리 일상 속 예다. 사투리는, 왜 이런 천대를 받아야 하는가. 사투리 쓰는 게 훨씬 매력적이라고들 말은 하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투리는, 마치 장기자랑 비슷한 취급이다. 우린 왜 사투리를 이리 대우하고 있을까. 


 ■ 내가 사투리를 포기한 이유

A씨(38ㆍ여ㆍ직장인)는 20살 대학생 때부터 되자마자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바닷가 출신인 A씨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2가지, “너네 아버지 배 타시니?”, “쌀 발음 진짜 안돼?”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처음엔 웃으며 답했죠. 그런데 온통 처음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걸 물어보니 나중엔 정말 스트레스였어요.” A씨의 언어는 현재 서울에선 서울말이 어색하다는 소리를, 고향에선 사투리가 어색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B씨(35ㆍ직장인)는 광주 출신이다. 그는 대학시절까진 사투리를 ‘고집’했다. 심지어 사투리를 쓰지 않는 동향을 만나면 혼내기(?)까지 했었다. 왜 서울말을 쓰느냐고 말이다. 그랬던 B씨도 결국 취업 준비를 하며 사투리를 포기했다. “면접에서 몇번 떨어지니까, 혹시나 사투리가 너무 세서 그런 건가 싶더라고요. 사투리 때문만은 아녔겠지만, 결국 서울말을 쓴 뒤론 합격했네요.”

C씨(29ㆍ여ㆍ직장인)는 지금도 9년 전 3월 1학기 첫 발표수업을 또렷이 기억한다. 러시아ㆍ북한 외교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국제정치의 현실주의ㆍ이상주의를 열심히 준비했다. 그런데, 동기ㆍ선배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사투리 너무 귀엽다”, “쟤 부산이야 대구야?” 곳곳에서 킥킥거렸다. 밤새 준비했던, 첫 발표였다. 국제정치의 이상주의ㆍ현실주의를 향한 C씨의 밤샘 고민은 결국 ‘사투리에 묻혔다’. “무척 불쾌했어요. ‘앞으로 내 생각과 지식을 전달할 땐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C씨는 그날 이후로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 예전엔 달랐다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저서 ‘방언의 발견’에 따르면, 17~18세기 고서에도 방언의 기록이 나온다. 참고로,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의 준말로, 오방은 동ㆍ서ㆍ남ㆍ북 그리고 중앙 지역을 일컫는다. 방언은 5가지 지역을 동등하게 보는 단어로, 원래부터 서울과 지방을 구별하는 단어가 아녔다.

1771년 유의양이 기록한 ‘남해견문록’은 남해도 사투리를 정리한 고서다. ‘너희’를 ‘늑의’로, ‘먹어라’를 ‘묵으라’로, ‘병아리’를 ‘비가리’로 표기한 식이다. 실학자 이덕무는 ‘신라방언’이란 글에서 ‘지방 관리가 돼 사투리를 알면 지방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나도 사투리를 익혀서 백성을 대할 때 사투리를 사용하게 됐다’고 적었다. 심지어 일부러 사투리를 배웠단 뜻이다. 물론 당시에도 서울말이 중앙어로서의 지위는 갖고 있었다. 하지만, 현재처럼 사투리를 배타적으로 대하진 않았다. 아래 글을 보자.

‘경기도 말씨는 새초롬하고, 강원도 말씨는 순박하며, 경상도 말씨는 씩씩하고, 충청도 말씨는 정중하고, 전라도 말씨는 맛깔스럽다.’

1900년 황성신문에 실린 논설 일부분을 현대말로 풀이한 내용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각 지방어의 특징을 잘 잡아냈다. 그러면서도 ‘편견’이 없다. 우린 통상 경상도 말은 ‘사납고’, 충청도 말은 ‘느리고’, 전라도 말은 ‘억세고’ 강원도 말은 ‘촌스럽다’고들 평가한다. 정 교수는 “황성신문의 표현에는 방언의 차를 각 지역 풍토 차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며 “당시 사람들이 방언에 가진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평가했다. 


 ■ 일제강점기, 그리고 근대화의 산물



야비한 사투리를 쓰지 말지어다”
“아부지, 어무니, 핵교 이래서야 쓰겠습니까? 똑바른 소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학교”
“사투리가 심한 데에 나는 야만적인 인상을 금할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하고 조선어 교육을 시작한다. 위의 표현은 실제 당시 문건에 쓰였던 표현들이다. 사투리가 ‘야비하고 야만적인’ 언어로 평가받는 시기다. 또, 민족계몽 차원의 문자보급운동에서도 사투리는 불가피하게 표준어의 적이 돼야만 했다.

이 같은 목적은 군사통치 시절에도 동일했다. 중앙집권적 근대화작업을 추진하면서 사투리는 더욱 천대받았다. 1962년 고운말쓰기 운동 관련 기사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욕설이나 사투리를 쓸 때마다 들은 사람이 지적, 성적표에 기입하고 매일 방과 후 교정 풀뽑기 작업을 한다.’ 사투리는 욕설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다.

노태우 정부 때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란 현 표준어 규정이 확립됐고, 2006년 이에 헌법소원이 제기됐으나 ‘표준어 규정은 그 자체만으론 아무런 법적 효과를 갖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결국 기각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사투리 감추자 vs 사투리 알리자



2000년대 이후 주요 영화 몇몇을 묶으면 전국 사투리 지도 격이 된다. 영화 친구엔 경상도 사투리, 황산벌은 전라도 사투리, 웰컴 투 동막골은 강원도 사투리, 거북이 달린다 안에는 충청도 사투리가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엔 주인공이 모두 부산 사투리를 쓰더니, ‘응답하라 1994’엔 아예 전국 사투리가 하숙집으로 총집결했다. 장미여관의 ‘봉숙이’도 경상도 사투리를 가사로 담았다.

한편으론, 사투리를 감추려는 현실도 공존한다. 오늘날 면접 학원 중에는 ‘사투리반’이 곳곳에 있다. 사투리 대신 서울말을 쓰도록 훈련하는 학원이다. ‘무엇보다 꾸준한 발성연습이 중요하다. 억양만 고쳐선 안 된다’는 독려(?)가 학원의 홍보 문구다. 취업에서 조차 사투리를 쓰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느끼는, 어쩌면 정답일 수 있는 불편한 현실이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우리 일상에서부터 사투리의 위상을 재정립할 때가 됐다. 정 교수는 저서를 통해 “사투리의 편견이 없는 사회에서 표준어는 누구나 꼭 써야 하는 언어가 아니라 써도 되고 쓰지 않아도 되는 ‘권장어’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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