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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APAS]약관, 제대로 읽어본 적 있나요?

[헤럴드경제 TAPAS=김상수 기자]무료 와이파이가 있다. 사용하려면 필수 약관에 동의해야 한다. 약관을 하나하나 읽고 동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알고보니 그 약관 안에 ‘화장실을 1000시간 청소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면? 당신은 1시간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는 대가로 1000시간 화장실 청소를 해야만 한다.



실제로 영국의 와이파이 관련업체 퍼플(Purple)이 지난해 실험한 내용이다. 2만2000명이 이 약관에 동의했다. 퍼플은 약관 내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에겐 상품을 제공하기로 했는데, 이 상품을 타 간 사람은 단 1명 뿐이었다.

지난해 3월부터 방송통신위원회는 업체가 필수 약관과 선택 약관을 분리하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필수 약관은 말 그대로 가입을 위한 ‘필수’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싫어도 동의해야만 하는 항목. 때문에 약관을 읽고 불만이 있더라도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어차피 동의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약관을 제대로 읽지 않는 이유다.

지난해 인기 더빙 동영상 앱인 콰이에 논란이 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반인 이용자의 얼굴이 광고 영상에 사용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해당 피해자가 불만을 제기하자 회사 측은 “이용 약관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는데, 실제 약관엔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무심코 동의한 약관, 함정은 그 안에 숨어 있는 셈이다. 


   그래서 한번 따져봤다

그래서, 어디 한번 약관을 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가입 당시 약관 항목을 별도 클릭하는 게 아니라 ‘가입하기’ 버튼을 누르면 약관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안내로 갈음하고 있다. 페이스북 약관에는 내가 페이스북에 제공하기로 동의하는 개인정보가 곳곳에 포진돼 있다. 



내가 올리는 콘텐츠,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 정보, 사진 촬영 장소, 파일 생성 날짜, 사진 촬영에 활용한 카메라 촬영기법, 종교관, 정치관, 건강 정보, 나와 연결된 사람 및 페이지 정보, 연락처 정보, 동기화 자료, 페이스북 이용 시간, 참여 콘텐츠 유형, 제품 거래 정보, 제품 금융 거래 관련 신용카드 정보, 내가 사용한 기기 정보, 기기 운영 체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버전, 블루투스 신호 정보, GPS 위치, 연결 이동통신사, IP주소, 쿠키데이터, 파트너사에서의 내 활동 정보

심지어 내 접속 기기의 배터리 잔량, 그리고 마우스 움직임도 페이스북에 제공하는 정보로 약관에 포함돼 있다. 심지어 위에 열거한 게 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내용의 전부가 아니다. 하나하나 정리해보려 했지만, 어느 순간 반쯤 포기했다. 이 모든 게 ‘가입하기’ 버튼 그 이면에 숨겨져 있다. 



청소년이 다수 가입하는 한 게임업체의 약관. 페이스북과 비교하면 훨씬 간단(?)하다. 그래서 A4 용지로 9장, 2만759자 분량이다. 약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데에 30여분 가량이 걸렸다. 읽어보니 ‘화장실 청소를 1000시간 시키거나’, ‘내 컴퓨터 배터리 잔량을 확인하는’ 등의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꼽자면, 모바일게임 서비스를 이용할 때 내 카카오톡 계정 정보(사진, 친구목록 포함)을 제공해야 한다는 항목 정도. 살짝 찝찝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용인할만한 수준이다.

이러고 보니 한숨부터 난다. 게임 한번 하려고 회원 가입하려 하니, 약관을 읽는 데에만 30분이 걸린다. 그것도 초집중하여. 표현도 어렵고 양도 많다. 그냥 게임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 이용약관 규정이 과거보단 한층 강화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과 표현이 많고 서비스마다 필수 정보 범위가 서로 달라 하나하나 꼼꼼하게 따져봐야만 알 수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연간 개인정보 침해 신고는 15만건 이상에 이른다. 개인정보가 침해될 때, 업체의 가장 큰 무기는 소비자가 ‘스스로 동의한’ 약관이다. 약관이 복잡하고 치밀할수록 업체는 탈출구가 늘어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업체가 필수로 요구하는 개인정보 범위를 최소화하고, 이용자가 스스로 개인정보 제공 범위를 설정할 수 있는, 자기정보통제권을 보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의미한 제도 개선이 이뤄지기 전까진, 귀찮아도 결국 별 수 없다.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볼 수밖에.

/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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