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게 지저귀는 새 소리만을 배경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웃는 표정으로 이뤄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대화는 한 편의 ‘무성영화’라는 평가가 나왔고 세간의 관심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에 쏠렸다.
[사진=연합뉴스] |
정상회담이 끝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이때 오간 이야기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9일 기자들을 만나 ‘두 정상이 도보다리에서 무슨 말씀을나눴는가’라는 물음에 “저도 여러분과 같은 입장이어서 궁금하다”며 문 대통령이 당시 오간 이야기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이 자리가 배석자가 전혀 없는 오로지 두 사람만의 만남이었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 간에 오갈 수 있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라는 해석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을전달하는 동시에 공개적인 검증을 받으면서 체제 보장과 같은 북한의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있다는 내용 등으로 설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문 대통령이 순차적 단계를 의미하는 듯한 손짓을 섞어 가면서 무언가를 설명하면 여기에 김 위원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두 정상만이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음으로써 상당한 내용에 ‘담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30분간의 독대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도보다리를 건너 평화의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의 표정이 매우 밝았던 것을 고려하면 ‘판문점 선언’에 담기지 않은여러 내용이 합의됐을 가능성도 있다.
두 사람이 나눈 이야기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끈질기게 설득하고 김 위원장이 이에 호응하는 모습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북미정상회담에서 또 다른 ‘담판’을 지어야 하는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문 대통령의 성의 있는 모습과 김 위원장의 ‘열린태도’가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상당한 성과를 냈을 것으로 보이는 ‘도보다리 단독회담’ 생중계는 ‘각본에는 없던’ 순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애초 두 정상의 친교 산책을 계획했으나 판문점이 워낙 제한된 공간이어서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의전비서관실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도보다리를 후보로 놓고 저울질하다가 도보다리를 최종적으로 결정했고 윤재관 행정관은 본격적인 계획을 마련하는 데 착수했다.
윤 행정관은 두 사람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동선을 고민해 직선으로 돼 있던 도보다리를 T 자로 바꿔 늘리고 최종적으로 남북 정상이 걸었던 길을 완성하는 동시에 잠시 앉아 얘기할 수 있게 별도의 자리까지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만 걸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북측이 난색을 보이는 등 우여곡절 속에 남측은 끈질기게 북측을 설득했다.
‘도보다리 독대’의 생중계 여부도 관건이었다.
애초에는 전속요원들이 이 장면을 녹화할 계획이었으나 춘추관실 이주용 행정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고 권혁기 춘추관장이 이를 밀어붙여 생중계를 결정, 이후 방송사 측과도 사전 조율까지 마쳤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도보다리 끝에 마련된 테이블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끝까지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짧지 않은 거리를 걸었던 만큼 잠시 쉬어갈 상황을 대비해 자리를 마련해놨을 뿐 남북 정상이 도보다리 끝까지 걸어갔다가 바로 되돌아올지, 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지는 두 사람의 판단에 맡겼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 실무진의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조율한 조한기 의전비서관의 역할도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잠깐 앉아서 가자는 문 대통령의 손짓에 김 위원장이 자연스럽게 따르며 만들어진 역사의 명장면은 의전비서관실과 춘추관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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