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 양견(楊堅, 文帝)이 남북을 통일하자 양광(楊廣, 明帝)은 남쪽의 경제력을 북쪽으로 이동시킬 궁리를 한다. 고구려 침공을 위해서도 남쪽의 부(富)가 필요했다. 604년 대운하 공사가 시작된다. 진(秦) 시황제(始皇帝)가 전국으로 통하는 도로(直道)를 뚫은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교통공사’다.
수 멸망의 원인으로 대운하를 꼽지만 ‘헛일’만은 아니었다. 수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이나, 당(唐)의 수도였던 시안(長安)은 대도시였지만 자체적인 식량조달이 어려웠다. 오늘날처럼 고속도로나 철도가 없었던 시절에 대운하는 남쪽의 산물을 북쪽으로 유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 이후 당, 송, 원(元), 명(明)에 이르기까지 대운하는 계속 확장됐다. 청(淸) 때부터 건설이 시작된 징후선(京沪線, 베이징-상하이간 철도)도 대운하 경로와 거의 일치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당제국의 팽창과 실크로드의 원천도 대운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륙운하가 부적합한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첫 ‘근대적 종단교통’은 1905년 경부선, 106년 경의선이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달리던 융희(隆熙) 열차는 1911년 압록강 철교 준공으로 대륙과도 연결된다. 일본이 우리민족을 수탈하고, 만주와 중국까지 침공한 데에도 이 철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으로 그 허리가 잘린다. 70년간 대한민국은 대륙과 떨어진 섬이었다.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정치 이슈다. 하지만 동시에 경제 이슈다. 동전의 양면이다. 뒤이은 북미정상회담까지 성공하면, 끊겼던 한반도의 맥이 다시 이어질 수 있다.
2016년 삼성전자는 러시아 철도청과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이용한 물류운송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뱃길로 50일이지만, TSR로는 18일이면 유럽에 닿는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닌 국내에서부터 TSR에 연결된다면 경제적 효과는 더 클 수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對一路)나,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발계획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은 우리 경제의 세로운 성장경로가 될 수 있다.
교통을 예로 들었지만, 남북경제협력이 가져올 변화는 어마어마하다. 제조업의 한계, 저성장과 일자리 부족, 내수부진 등 우리 경제의 많은 고민이 남북경협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 북한의 속뜻을 모르니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다. 뜻밖의 난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처지에 서도 남북간 경협은 유용하다.
북한에게 핵은 그동안 체제를 지켜주던 유일한 힘이었다.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는 지켜도 고립을 벗어날 수 없다. 30대인 김정은에겐 앞으로의 수십 년이 끊임없는 투쟁이어야 한다. 지난 세월 잘 버텼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대신 핵을 포기하면 빠른 시일 내에 이를 대체할 뭔가가 필요하다. 신속하게 경제개발을 이뤄내야 권력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 대한민국과 경제적으로 연결되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정상회담의 성공은 모두에게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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