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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배車 운행금지 논란…문제는 ‘차높이’
주민 안전 위해 진입금지 조치
지하주차장 통해 배달 요구
택배차량 높아 진입 불가능
기사들 반발…한때 배달 보이콧

택배기사가 아파트 동 앞에 주차할 수 없는 곳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의 다산신도시는 최근 택배차량 진입을 금지했다. 주민들은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반면 아파트 정문에서부터 직접 물건을 배달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의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 정문 근처 지상 공동주차장에선 실제 택배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4명의 택배 기사들은 택배 물품을 꺼내 주차장 바닥에 내려고 다시 카트에 옮겨 담았다. 아파트의 택배차량 진입 금지 조치 때문에 아파트 앞까지 들어가지 못하자, 주차장에서 카트에 실어 다시 집까지 배달해야 했다. 작업을 마친 한 택배기사가 가전제품, 옷 등 택배 물건들이 담긴 카트를 밀며 아파트 단지를 가로 질러 걸었다. 배달해야 할 동까지 거리는 약 200m. 그는 “오늘은 물량이 그래도 적어서 카트로 직접 배달을 할 수 있지만 많은 날에는 이조차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지상 주차장. 택배 물건이 바닥에 놓여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옆에 있던 택배기사 이모(56) 씨는 작은 택배 물건을 꺼내며 “무거운 냉장고를 옮기나 이 손바닥만한 물건을 옮기나 가격은 약 700원으로 동일하다. 배달해야 하는 양도 많고 시간도 부족한데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입주민 “아이들 안전을 위해 불가피”=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 내에 택배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건설사가 신도시를 만들 때 ‘차 없는 아파트’로 조성했기 때문에 아파트 내에는 소방차 등 긴급차량 외에는 차량이 들어갈 수 없다. 실제 아파트 단지 내에는 차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아파트 주민은 인도를 가리키며 “입주민 대다수가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다고 해서 이사 왔는데 차량이 들어오면 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최근 아파트 내 벌어진 사고다. 올해 초 다산신도시 한 아파트 단지 안에서 후진 중이던 차량과 아이가 충돌할 뻔한 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아파트 주민들은 3월 12일께 택배회사들에 지상통행로 차량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택배업체에게 지상이 아닌 지하 주차장을 통해 택배를 배달해 달라고 요구했다.

▶돈 들여 택배차 개조하라고?…배달 보이콧까지=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이 지역의 아파트의 지하주차장은 높이가 2.1~2.3m로, 일반적인 택배 차량 높이(2.5~3m)보다 낮아 진입할 수 없다.

일부 택배 업체는 이에 맞춰 저상 차량으로 바꿨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개조 비용도 문제지만 차고를 낮추면 택배차의 적재공간이 줄어들면서 택배기사들의 수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한 택배 기사는 “소규모 마트나 택배업체라면 몰라도 물량이 많은 사업장은 저상차 자체가 없다”며 “저상 차로 개조하는 데는 100~150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를 부담하는 것도 무리”라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는 “차고를 낮출 경우 상하차 작업시 허리를 굽히고 일해야 하는 등 기사들이 크게 불편해진다”고 주장했다.

▶‘품격과 가치를 위해…’ 사태 키운 안내문=설상가상으로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만든 택배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이 알려지면서 갈등은 심화됐다. ‘품격과 가치를 위한’이라는 문구로 인해 갑질 논란까지 불거졌다. 급기야는 지난 2일 택배기사들의 배달 보이콧 사태까지 벌어졌다. 아파트 주민들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서 만든 택배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 [출처=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여전히 입주민과 택배 회사 측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입주민 이모 씨는 “’품격과 가치를 위한’이라는 문구는 아파트 모든 공고문에 쓰인 관용적인 문구로, 갑질을 하려고 쓴 말이 아니다”라며 “입주민 측에서는 택배업체에 저상차 도입 및 대안을 위한 계도 기간도 줬지만 택배 측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으로 택배사와 협의를 통해 해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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